공연을 준비하는 친구의 부탁으로 글을 한 편 쓰게 되었다. 이제는 글을 쓴다는 것이 종종 부끄럽다. 아직도 마음을 열어 할 이야기가 남아있나 싶지만, 내 마음은 '그렇다'고 답하는 것 같다.
어둠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주로 저녁에 활동하고, 인적이 드문 으슥한 곳으로 다니곤 한다. 어두컴컴한 골목 한구석이 무섭지도 않나 싶은 곳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빨간 불빛이 나는 담배를 뻐끔뻐금 피워대거나, 하얀 불빛이 가득한 휴대전화 액정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도 한다.
그러다 오늘도 불이 꺼지지 않는 24시간 편의점에 들러 마실 것 하나를 사들고 나와서는 달빛을 조명 삼아 거리를 걸어본다. 그렇게 걷다보면 종종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을 마주치게 되는데, 이들 대부분은 또, 눈에 잘 띄지 않는 무채색 색상의 옷을 즐겨 입는다.
고요한 밤의 산책을 마치고서는 불꺼진 껌껌한 방으로 돌아온다. 이제 하루를 시작할 때가 된 것이다. 남들이 자는 시간에 일어나고, 남들이 일어나는 시간에 잠을 자는 이들이 그러는 이유는 자못 다양하다. 어쩌다보니 그런 경우도 있고, 또 피치못한 경우도 있다.
하룻밤을 살뜰하게 보내는 데 익숙한 이들은 밤을 더 섬세하게 구분하는 데 능하다. 초저녁, 자정, 깊은밤, 더 깊은밤, 그러다 새벽… 저 멀리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 이제 잠을 자야할 때인 것이다. 내일의 새로운 저녁을 기약하며.
누군가는 해가 지고, 밤이 됨을 아쉬워하지만, 누군가는 비로소 해가 지고 밤이 됨에 안도한다. 해가 떴으니 해가 지는 것이 이치라면, 밤이 졌으니 밤이 뜨는 것은 참으로 공편한 처사가 아닐까?
어둠 속에서만 발견되는 것들이 있다. 밝은 대낮,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던 무언가. 눈을 감아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마음.
밤을 지새워본 사람은 안다. 밤과 밤 사이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더욱 예민해져야 한다는 것을. 자명한 빛의 도움이 없으니, 그 깊이를 애써 헤아려야 한다는 것을.
어둠을 헤아려본 사람은 안다. 어둠과 어둠 사이에는, 검정과 하양의 사이처럼, 1과 0의 사이처럼 무수한 또 다른 어둠들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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