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이 아닌 이를 풀어쓴 일종의 입문서입니다.
1 현상이란 누구에게 어떤 것이 주어져 그에게 의식되는 것을 말한다.
2 가장 확실한 것은 나는 죽는다임을 알면서도 그것을 보편화시켜 인간은 죽는다로 만들고, 그 보편적인 죽음 너머에서 철학함의 주제를 긁어모으느라 노력한 것은 결국 가장 자명한 진리인 나의 죽음 앞에서의 도피이며, 나의 신체를 외면한 결과일 뿐이다. 나는 육체에서 해방된 사유로서의 주체도 아니고 순수의식으로서의 초월론적(선험적) 자아도 아닌, 육체를 가진 존재로서 지금 여기 살고 있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바로 나인 것이다. 나는 바로 나의 육체이다.
3 인간은 세계 속의 존재이며, 그가 관여해 본 적이 없는 그 세계로 선택의 여지없이 내던져져 그곳에서 통용되는 삶의 논리와 문법을 배우며 그 세계의 일원으로서 살 수밖에 없다.
4 육체를 감옥으로 생각하고 육체를 벗어난 순수한 영의 상태를 이상적으로 꿈꿀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러한 꿈도 결국 인간이 본질상 육체를 가진 존재이기에 꿈꿀 수 있는 것이다.
5 인간은 끝을 향한 존재로서 유한한 존재이기에 인간만이 자신의 종말과 관계를 맺으며 그 종말을 어쩔 수 없는 나의 불가능성의 가능성 또는 가능성의 불가능성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삶을 마감할 수 있다.
6 실존은 한마디로 인간의 있음이 단지 사실적인 눈 앞에서 있음이 아니라 과제로 부과되어 있음 이기에 그 존재적 독특함은 곧 존재해야 함이며 그것도 각자 자신의 존재를 떠맡아 각기 나름대로 자신의 존재를 존재해야 함이다. 그래서 오로지 인간에게만 그 있음이 완성된 존재로 지워지지 않았으며, 인간은 존재하면서 바로 자신의 존재가 문제 되고 있는 존재자인 것이다. 인간에게는 지금 그가 무엇으로 존재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무엇으로 존재하기를 결단 내리고 있는가 하는 그의 존재 가능이 결정적이다. 인간은 그가 결단 내린 그 존재 가능에 따라 지금의 자신의 존재를 존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사실적 존재를 자신의 존재로 떠맡아 자신의 죽음으로 앞서 달려가 보아 자신의 존재 가능성 아래에서 하나의 가능성을 택해서 결정을 내려 자기가 되기로 마음먹은 그 존재 가능을 지금 여기서 실현해 나가면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이 실존의 본래적 모습이다.
7 그런데 인간은 대개 결단을 내리지 않고 남이 자신에게 전해주고 있는 존재가능을 인수받아 거기에 맞춰 살아나간다. 이렇게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을 결정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그들이 지정해 주는 존재 가능을 아무 저항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사는 존재양태를 비본래적 양태라고 말한다. 인간은 대개 이러한 그들의 세계 속에서 안온함과 포근함을 느끼며, 그들 삶의 논리와 문법을 따라가며 살 때 정상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인간의 실존은 이렇듯 그들의 세계와 나의 실존적 세계 사이의 긴장 속에 존재함을 말한다. 사회 세계를 떠나 실존 세계가 있을 수 없고 실존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세계가 있을 수 없음을 보고 있는 것이다. 현대 인간의 과제는 이러한 긴장을 어떻게 잘 풀어나가는가 하는 데 있다.
8 인간은 고립되어 생각하는 자아가 아니라 세계 속의 존재이다.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자연과 사물, 인간세계의 한가운데 던져진 것이다.
9 해석학적 탐구의 성과중 하나는, 대상을 구성하고 세계를 형성하는 이른바 초월론적 자아가 시원을 자기 안에 갖고 있는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 그 역시 구성된 존재라는 것을 통찰한 데 있다. 따라서 이 초월론적 자아는 내용면에서 그가 처해 있는 역사적인 조건과 해석학적 상황에 얽매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10 비트겐슈타인은 후기 철학에 이르러 생각하지 말고 보라고 명령한다. (...) 일상 언어가 사용되는 맥락은 생활세계이다. 그는 거기에 바로 언어의 의미가 있음을 발견한다. 다시 말해 언어는 모호하므로 그 모호함을 버리고 언어의 정확성, 투명성을 구하려 하지만 언어에는 정확성, 투명성이란 없다는 것이다.
11 대중적으로 말해 현상학이란, 우리로 하여금 지각하고 기억하고 판단하고 또는 어떤 것을 기대하게끔 하는 우리의 의식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기술하는 이론이다. 다시 말해, 의식이 어떻게 사물들의 현상을 인식하고 정리해내는지 기술하는 학설이다. 예를 들어 내가 거대한 나무의 둘레를 한 바퀴 돌아볼 때 나는 나무를 여러 관점에서 지각하며 나의 의식이 관점들을 서로서로 연결시킨다. 나의 의식은, 내가 나무의 새로운 면을 볼 때마다 그것이 하나의 다른 나무를 보고 있는 듯한 오류에 빠지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12 우리는 존재하는 것을 시간이라는 기준에 의해 아래와 같이 분류할 수 있다. 나무 참새 집 그림 하늘 또는 삼국통일 살수대첩 동학혁명 등은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것들은 우리들이 감관을 통해 알 수 있는 자연물 또는 인공물들이거나, 아니면 우리들이 배워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들이다. 이러한 모든 것은 시간적인 것들 즉, 시간 속에 있는 것들이다. 직선 평면 입체 등의 공간적 관계들과 수의 체계와 관련된 수적 관계들도 존재하는 것인데 이러한 것들은 비시간적인 것들, 즉 시간에 의해 규정되지 않은 것들이다. 명제의 의미, 명제의 진리, 타당함 역시 존재하는 것들이다. 이것들은 무시간적인 것들, 즉 시간을 갖지 않은 것들이다. 반면 명제를 발언한다는 것은 존재하는 것으로서 시간적 흐름 속에 내맡겨져 있다. 신 역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은 영원한 것으로서 초시간적인 것, 즉 시간을 넘어서 있는 것이다.
13 존재자가 그것의 존재에서 분류되어 파악된 것 전체를 우리는 의미라 부른다. 따라서 존재하는 것의 존재의 의미는 시간이다.
14 존재는 존재자에서 그것이 없는 것이 아니고 있는 것이라는 있음의 사실을 지칭한다. 이렇게 이해할 때 존재자의 존재는 어떤 개별 존재자가 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 기술이다. 또한 존재자의 존재는 그것으로 있음, 즉 그 존재자의 무엇임을 뜻하기도 한다. 존재자의 본질이라는 의미로 이해된 존재자의 존재의 경우인 것이다. 어쨌거나 있음으로 이해되거나 본질 또는 무엇임으로 파악되거나 이 경우의 존재도 존재자는 아니다.
15 현존재에게 고유한 점은, 그의 존재가 자신의 존재와 더불어 그 자신에게 열어 밝혀져 있다는 점이다. 현존자는 실존에 의해 규정된 존재자이다. 실존은 현존재가 관계 맺을 수 있고 또 언제나 어떻게든 관계 맺고 있는 존재를 말한다. 현존재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실존에서부터, 즉 자기 자신의 존재를 문제 삼아 그 자신으로서 존재하거나 아니면 그 자신이 아닌 것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에서부터 이해한다.
16 서양 전통 철학은 이 무엇을 본질이라는 말로 표현해 왔다. 따라서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본질은 그의 존재해야 함에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현존재가 무엇인지 즉 그의 직업이 무엇인지는 현존재가 자신의 존재를 문제시할 수 있고 그중 하나의 무엇을 자신의 것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데 달려 있다는 것이다. 현존재의 무엇 또는 본질은 현존재의 존재 가능성, 즉 그가 존재할 수 있다는 데 달려 있는 것이다. 현존재에게는 존재가 실존보다 우위이다.
17 인간의 존재는 연필의 존재처럼 이미 고정돠어 버린 것이 아니다. 인간은 무수히 많은 가능성들을 갖고 있다. 인간은 자신이 꿈꾸고 희망하는 가능성이 전혀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할 때 존재하기를 스스로 그칠 수조차 있다. (...) 현존재는 각기 그의 가능성이다.
18 인간만이 있음과 없음을 구분할 수 있다. 인간은 이러한 있음과 없음을 구별할 수 있는 자리이다.
19 현대 철학은 보편과 무한, 그리고 영원에 반기를 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러한 반기의 선두자는 키에르케고르인데 그의 철학적 기반은 데카르트 사유의 확실성과 대비되는 죽음의 확실성이다.
20 인간의 심리는 자신의 죽음을 자신으로부터 분리시키려한다. 사람들은 타인의 죽음을 경험할 때도, 죽음을 타인의 문제에 불과한 것으로, 즉, 자기 자신과는 무관한 것으로 생각한다. 인간은 죽음을 삶 속에서 제거하려 한다.
21 인간은 자신이 죽을 수 밖에 없음을 염려하는 시간적인 존재로서, 다시 말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스스로 떠맡아 자신의 있음을 창조해 나가는 존재로 파악할 수 있다.
22 존재자 가운데 인간의 있음은 무차별한 있음이 아니라 그 존재자의 있음 자체가 문제가 되는 그러한 있음이라는 점에서 다른 모든 존재자와는 다르다. 이런 독특한 믿음을 키에르케고르는 관계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우리는 인간의 있음을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있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
23 하이데거는 모든 것을 존재의 관점과 지평에서 새롭게 볼 것을 주장한다. 그렇게 볼 때 철학{형이상학}도 최종 근거와 제일 원칙에 대한 학문이거나, 지혜에 대한 사랑이거나 세계관이 아니라 존재자 전체로의 침입사건이다. 존재하는 것 전체를 이성 또는 개념으로 장악하려는 인간의 시도가 곧 철학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전개된 문화사와 사상사는 다른 것이 아니고 존재(있음)을 둘러싼 거인들의 싸움이다. 존재를 어떻게 파악했는가에 따라 신관, 세계관, 인간관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24 칸트는 자기 자신의 철학체계를 정리하면서 다음과 같이 네 가지 물음을 던졌다. 인식론적 물음인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도덕적, 실천적 물음으로 우리는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 그리고 종교적인 물음으로 우리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마지막으로 인간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다.
25 있음이 모든 피조물에게 다 똑같이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철학적 관심의 대상은 당연히 무엇으로 쏠리게 된다. 그러나 실존 철학이 등장하며 무엇의 차이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본질의 형이상학에 의문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본질 형이상학의 끝에는 헤겔이 있으며, 이후 니체에 이르러서는 본질보다는 생성이 강조되었고, 생성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논의가 나타났다. 키에르케고르에 이르면, 인간의 있음이 하나의 책상이 있음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논의된다. 그는 인간의 있음을 관계 맺음이라 말한다.
26 인간에게는 바로 그 '있음'이 문제되는 것인데, 이제까지의 철학에서는 그런 사실을 외면하고 오직 인간의 '무엇임'만을 강조하여 이성, 사유, 정신, 영혼, 주체라는 것으로 인간을 설명하려 했다.
27 하이데거는 인간의 있음이란 거기-있음이고 거기라는 것은 바로 세계라고 말한다. 따라서 인간의 거기-있음이란 곧 세계-안에-있음이다.
28 인간은 그 있음이 완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있음을 존재해 나가야 한다. 그는 그 있음을 떠맡아서 어떻게 존재할 지를 결단 내려야 한다. 사르트르의 유명한 말 인간은 자유로 단죄받았다는 인간은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존재를 떠맡아야 하고 선택해야 함을 의미한다.
29 가능 존재는 내가 나의 미래로 나를 던지면서 나를 실현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인간은 그가 되려고 마음먹은 바로 그것이다라고 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들 스스로가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무엇으로 보고 그 가능성을 어떻게 미래로 던지며 그 가능성과 어떻게 관계 맺으면서 현재의 나를 바꾸어 나가는가 하는 데 있다.
30 하이데거는 이미 흘러가 버렸다는 과거가 끊임없이 지금의 나를 규정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 과거가 없이 지금의 나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지금은 없는 과거가 지금 나의 족쇄가 되고 지금은 없는 미래가 지금의 나에게 삶의 활력을 주는 것이다.
31 모든 인간이 죽음을 남에게 맡길 수 없고, 죽음만은 그 자신이 감당해야 하듯이, 인간은 자기의 존재와 싸워야 한다.
32 인간이 있어야 하는 바로 거기인 세계는 있고 없고가 증명되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첫 번째 전제조건은 바로 인간이 세계-안에-있다는 그 사실이다.
33 세계-안에-있음이라 할 때 그 있음은 나 혼자 있음이 아니라 더불어-있음이고 함께-있음이다. 인간의 있음은 항상 남과 더불어 있음이다.
34 비트켄슈타인은 철학의 임무를 '파리를 파리병에서 끌어내오기'에 비유한다. 파리는 파리 병에 한 번 갇히면 밖으로 나올 수 없다. 온통 주위가 투명한 유리병이기 때문에 파리는 출구가 어딘지를 알아보지 못하고 보이는 대로 날아들다 유리병 벽에 부딪치기만 한다. 이제까지 인간은 바깥에 있는 현실을 직접 손으로 잡고 눈으로 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바깥에 있는 현실과 우리 인간 사이에는 언어라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이 가로놓여 있다. 그 병이 매개이며, 그것이 세계와 우리 사이를 매개한다. 우리가 투명하다고 생각하는 세계는 언어로 짜인 의미의 그물망이다.
35 그들과 비슷해질 때 불안은 사라진다. 곧 자기도 그들 속에 속해 있고 그들과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때 불안은 사그라든다. 하이데거는 불안이 피어오르도록 그대로 두라고 권고한다. 불안 속에서 우리라 대면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막연한 불안감 속에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가장 보기 싫은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 우리가 정신없이 다른 존재자에 매달려 있을 때 불안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들은 끊임없이 일거리, 볼거리를 찾아다닌다. 그것은 곧 자기를 망각하기 위한 조치인 셈이다.
36 불안에 대한 용기를 갖는 사람은 자신을 대면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그 동안 자기가 매달려있던 것들이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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