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자전거를 타고 뉴질랜드를 여행할 때였다. 당시 나는 2박 3일의 식량을 짊어지고 레인보우 트레일을 지나고 있었다. 여행 첫 날, 예상치 못한 자전거 고장과 심각한 비포장 도로 상태 때문에 예상보다 얼마 달리지 못한 채 산 중턱에서 밤을 맞은 적이 있었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산에서 헤드라이트 하나를 켜고 광활한 대지를 달리고 있자니, 덜컥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오전에는 드문드문 차가 오가기도 하는 길 한복판에 텐트를 치고 잘 수도 없는 노릇이라 지도에 봐두었던 호수까지 이를 악물고 달리는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예상보다 몇 시간을 더 걸려 한밤 중 캠프 사이트에 도착하자, 온 몸에 힘이 쭉 빠져 쓰러지고 말았다.
그 날 내가 길을 달려갈 수 있었던 이유는 길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실제로 지나는 길은 척박하기 그지 없고, 좋지 않은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불안이 엄습해 오기도 했지만, 조금만 더 힘을 내면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 밤을 헤쳐나가고자 했다.
다양한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는 요즘, 비슷한 생각을 한다. 내가 걸어가는 길이 과연 맞을까.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내일이 과연 오늘의 길과 맞닿아 있을까. 인생에는 자전거 여행때와 같은 실증적인 지도도 없는데, 정말로 괜찮은 걸까. 그래서 나는 길이 있다고 믿기로 했다. 그 길이 있다고 믿게 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순간들을 믿기로 했다. 그렇게 내 마음의 지도를 따라가다보면, 반드시 나의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길이 있다고 믿는한, 길은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소박한 나만의 믿음을 갖고 길을 계속 달려가는 도중, 실제로도 길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길일 때가 많지만. 그게 또 모르는 길을 달려가는 묘미가 아닐까. 요즘의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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