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나는 바닷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집에 살고 있었다. 창문을 열면 바로 푸른 바다가 보이는 곳은 아니었지만, 집을 나서서 골목길에 접어들면 하늘의 색에 따라 때로는 푸르게, 때로는 잿빛으로 물드는 바다가 조금씩 시야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그곳의 바다는 인기많은 해수욕장도, 그렇다고 경치가 좋은 바다는 아니었다. 다만, 동네의 어선들이 드나드는 작고 쓸쓸한 항구가 맞닿아 있는 곳이었다.
부둣가를 따라 등대 끝까지 걸어가면 테트라포드가 겹겹이 쌓인 길의 끝에 서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나도, 길도, 바다도 더는 나아갈 수 없는 곳에 가만히 앉아 노트와 펜, 카메라를 꺼내들곤 했다. 그렇게 바다 사진을 찍고, 떠오르는 질문에 다르게 답해보려 애쓰며, '바다'와 바다의, '나'와 나의 좁혀질 수 없는 간극에 기어코 다리를 놓고자 애쓰곤 했다.
그러다 실재하는 바다와 '바다'라는 단어의, 나와 '나'의 차이를 이해한 다음에야 나는 그 바다를 떠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정의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이해하지 못해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그러니까 ‘당신’은 당신은 아니라는 깨달음은 많은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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