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국 정치에 관한 글을 읽을 때면, 소위 말하는 '운동'이라는 용어를 자주 발견한다. 그러한 '운동권'에서 자란 적 없는 세대인 나는 주장으로써 이데올로기가 사람들을 지배하고, 특정 계급의 행동 양식을 규범화하는 일종의 종교적 시대가 있었구나 하곤 한다.
오늘날 우리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아래에서 살아가지만, 이와 공존하는 다른 이데올리기의 다양성과 실재성은 이전의 무엇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거칠게 말해, 전과 같은 '운동'은 당분간 유효하지 않을 것인데, 자본주의에서는 그러한 운동 또한 하나의 다양한 계급적 투쟁 정도로 치부되기 때문이며, 실제로 그러한 운동들은 다수의 감흥을 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변화와 혁명을 위해서는 가진 것보다 잃을 것이 없는 이들이 다수가 되어 이를 정의로운 수단으로 주장하여 파급 효과를 일으켜야 하는데, 자본주의에서는 '정의로운 외침과 주장'이 아닌 '현명하고 전략적인 행동'이 바람직하고도 숭고한 가치로 자리잡고 있다. 무엇보다도 변화와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는 피라미드 구조상의 하위 계급은 '변화를 지향하며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보다, 변화시키지 말고 조금 더 노력해서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곤 한다. 중위 계급과 상위 계급 또한 마찬가지다. 모두가 '제 몫은 제가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며, 조금이라도 더 가지길 원한다'. 결국, 변화와 혁명을 원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이데올로기 측면에서는 가치와 효용이라는 자본주의의 손익 계산에 따라 필수불가결한 온건적 개혁들만이 있을 것이다. 결국 다시 한 번 거칠게 말해 이데올로기가 세상을 바꾸는 시대는 지났다. 그보다는 모두가 마주하는 근원적인 물음인 '존재와 시간'에 답하는 기술과 시스템에 또다른 어떤 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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