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다. 이는 단지 '오늘 하루 먹을 양식을 달라'는 것 이상으로, '내일 일을 염려치 않고,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가겠다.'는 삶의 태도를 담고 있으며, 더불어, 크리스천으로서 오늘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또 다른 의미의 양식을 간구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의 흡족한 양식을 구하는 태도는 최선이라는 삶의 가치와 함께 겸허함을 지향한다.
2020년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2019년을 돌아보건데, 이번 한 해 만큼 일용할 양식에 허덕였던 적도,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일용할 양식을 갈구하지 않았던 적도 없는 것 같다. 아이러니한 풍요의 시간을 보냈던 것이 아니라, 그러한 부족과 결핍에 그만 익숙해져 버린 탓이었다. 계속되는 실패와 좌절, 포기와 절망이 텅 빈 마음 한 구석을 가득 채웠고, 그렇게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많은 것들을 흘려 보냈다.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과 순간을 자꾸 되돌아 보게 되는 어쩔 수 없음이 연말, 내게 남았다.
2020년. 어제나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 있다는 당연하면서도 매번 새로운 그 사실에 희망을 품는다. 돌이킬 필요도, 돌아갈 필요도 없는 오늘에는 매번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새롭게 시작되는 가능성이 있으리라 기대한다. 오늘은 어두운 어제를 한 걸음 딛고 선 불투명한 내일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 위안을 얻는다. 2020년 '일용할 양식'을 갈구하며 살아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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