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맞춰 짐을 부치고 집에 내려왔다. 2년이 넘는 길고도 짧았던 서울 살이를 마치고, 다시 돌아온 집은 포근하고 아늑하기 그지없었다.
대학생이 되며 기숙사에 들어간 나는 20대가 되면서 집을 떠나왔고, 그때부터 내게 집은 든든한 밥을 먹고 애정을 누리는, 그렇게 지쳤을 때 쉼을 얻고, 다음을 위한 힘을 재충전하는 곳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집에는 그러한 공간을 만들어 가는 부모님이 줄곧 계셨다.
하우스(house)와 홈(home)이라는 영어 단어를 한국말로 번역하면 모두 집이지만, 그 둘의 뜻은 조금 다르다. 하우스가 건물로써 집을 의미한다면, 홈은 보다 아늑한 집 안의 공간, 가정을 일컫는다.
서울의 자취방이 그저 하우스에 불과했다면, 부모님과 함께 있는 이곳은 따뜻한 홈이다. 서울의 자취방과 부모님 댁을 구분 짓는 결정적인 기준은 집의 크기나 위치, 방의 모양이나 인테리어 등이 아니라 그 공간에 누구와 함께 하며 어떠한 '시간'을 만들어 내느냐는 것이었다.
나이가 들며 조금씩 더 잘 알게 되는 것은 그러한 홈으로써 집을 꾸려가는 데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시간과 노력의 흔적들을 부모님의 얼굴과 등에서 때때로 발견한다. 그럴 때면 애써 그것들을 시간으로부터 떼어 놓고 붙들고 싶어 지지만, 어김없이 새해는 찾아온다.
집을 꾸려가는 행복하면서도 동시에 헛헛한 삶의 모양새들을 가늠해 보는 마음 한켠에는 언제나 미안함이 가득하다. 시간이 아직은 우리 편이라 말할 수 있을 때, 이 공간의 경험과 시간이 더욱 애틋해 질 수 있기를 기도하는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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