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너 마리아 릴케 ⏐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한 번은 친구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시는 너무 어렵다고. 나는 친구가 몇 년 전에 선물로 준 시집을 그때까지도 다 읽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살면서 처음 선물 받은 첫 시집이었는데, 몇 편의 시를 읽고 또 읽어봤지만 결국 끝까지 보지는 못하고 있었다. 시가 너무 어렵다고 말한 그 날, 친구는 나와 함께 시를 읽어줬다. 시가 단지 감상적인 것이 아니라, 그 속에는 시적 논리와 흐름이 있다는 걸, 처음으로 이해한 날이었다.
요즘에도 시를 쓰고 있냐는 질문에 친구는 그렇다고 말했다. 왜라고 묻지도 않았는데, 친구는 애써 그 이유를 설명하려 했다. 그런 생각을 한다. 글을 쓴다는 것, 그러니까 시든 에세이든, 비평이든 무엇이든 결국 읽히기 이전에 쓰는 이의 만족을 위한 것이고, 또한 그러한 만족만으로는 계속 글을 쓰며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말이다.
가볍고 간결한 문장들이 환영받는 시대에 애써 정확한 단어를 고르고, 문장의 무게를 가늠하는 일은 어쩌면 시간 낭비일지도 모른다. 또한 쓰는 이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누군가 좋은 글을 곱씹어 읽으며, 그것을 가슴 깊이 간직했다 나누기도 하는 시대는 이제 영영 지나가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별 수 있는가. 쓰기로 한 이상, 계속 쓰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
단 하나의 방법이 있을 뿐입니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십시오. 당신에게 글을 쓰라고 명령하는 근거를 찾아내십시오. 그것이 당신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펴고 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글쓰기를 거부당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는지를 스스로에게 고백해보십시오.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이 맞는 밤의 가장 고요한 시간에 ‘나는 쓰지 않으면 안 되는가’라고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마음속을 파헤쳐 들어가서 깊은 대답을 찾으십시오. 만약 대답이 긍정적이라면, 만약 당신이 이 진지한 물음에 굳세고도 단순하게 ‘나는 쓰지 않을 수 없다’는 말로 대답할 수가 있다면, 그때에는 당신의 생활을 이 필연성에 따라 구축하십시오.
'쓰는 이'들은 릴케의 말처럼, 그러한 삶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다음 문장을 기다리듯, 다음 때를 기다리고, 엉망이 된 문단들을 처음부터 다시 쓰기로 결심하듯, 몇 번이고 다시 시도해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시도들을 굳이 예술의 영역으로 포섭시킬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다만, 자신에게 진실되고, 또 누군가에게 필요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수목은 그 수액의 흐름을 재촉하지 않고, 봄날의 폭풍우 속에 유유히 서서 혹시 여름이 안 오는가 하고 걱정 같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여름은 꼭 옵니다. 그러나 여름은 마치 눈앞에 영원이 있는 듯 아무 근심도 없이 조용히 드넓은 마음으로 기다리는 인내심 강한 사람들에게만 찾아옵니다. 저는 그것을 날마다 배우고 있습니다. 괴로워하면서도 배우고, 그 괴로움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미완성의 작품과 씨름하는 나날을, 릴케의 말처럼 '아주 낯선 말로 쓰인 책처럼 사랑'할 일이다. 쓰는 이와 독자를 이어줄 적절한 깊이의 단어와 문장은 어느 순간에건 불쑥 찾아올 수 있는 일이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함으로 자신만의 길을 계속 걸어가는 것이니 말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인생은 옳다'는 그의 말을 믿어 볼 일이다.
당신은 아직 매우 젊고, 모든 일을 시작하기 전입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당신에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당신 마음속의 해결되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해서 인내를 가져주십시오. 그리고 물음 그 자체를 닫혀 있는 방처럼, 아주 낯선 말로 쓰인 책처럼 사랑해주십시오. 지금 당장 해답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아마도 당신이 해답에 맞추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지금 당신에게 그 해답이 주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산다는 것은 긴요한 일입니다. 지금은 물음을 살아가십시오. 그렇게 하면 아마도 당신은 차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먼 미래의 어느 날, 해답 속으로 들어가서 해답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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