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함피를 떠나 지금은 마이소르에 있다. 함피 여행에 대해 쓸말은 많으나 지금은 너무 늦은 시간이니 간략히 어제와 오늘 하루에 대해 기록해 두려 한다.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져 버리는 것들이, 단지 내게서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서 사라진다는 것이 어딘가 아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호스펫에서 슬리핑 버스 타고 마이소르
함피를 생각보다 일찍 떠나게 된 이유는 호스펫으로 저렴한 값에 데려다 준다는 릭샤 아저씨 때문이었다. 호스펫에도 어디 죽치고 있을만한 곳이 있겠지 하고 기차 출발 8시간 전에 호스펫에 왔는데. 웬걸, 카페에 가도 눈치가 보여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기차역에 들어가서 가방을 베고 꾸벅꾸벅 졸다가 깨곤했다.
아, 릭샤 아저씨가 왜 싼 값에 데려다 준다 했냐면 말이다. 릭샤가 고장나서 마침 고치러 가는 길이었던 것이다. ㅋㅋㅋㅋㅋㅋ 그렇게 1단 기어 밖에 들어가지 않는 릭샤를 타고 (앞서가는 경운기를 추월하려다 실패함) 호스펫에 와서는 하릴없이 기차가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이럴 거면 그냥 함피에 좀 더 있을 걸 하는 후회가 막심했다.
역에서 몇 시간을 보내다 함피에서 우연히 만났던 한국인을 다시 만났는데, 그녀는 코로나로 연기된 개강을 틈타(?) 인도 여행을 연장하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는 마이소르까지 목적지가 같았고, 그렇게 인도 여행에 대한 잡다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심심치 않게 시간을 보내고 기차에 올랐다. 그녀의 기차 칸은 에어컨과 담요가 있는 3A. 나는 그래도 누울 자리는 있는 SL(슬리퍼)였기에 다시 헤어져야 했지만 말이다. 슬리퍼 칸에 타는 게 이제 아주 익숙하기는 한데, 맨 꼭대기인데 선풍기 한 대가 직빵으로 돌아가 후드티를 꺼내 입고 잠을 청해야 했다.
호스펫에서 마이소르까지는 저녁 9시에 출발해서 다음날 아침 9시에 도착하는 여정이었는데, 결론적으로 뒤척임 + 가방 때문에 자리 없음 때문에 잠을 잘 자지는 못했지만, 또 그렇다고 기차에서 내릴 때 막상 피곤하다 느껴지지는 않았던 조금 이상한 여정이었다.
마이소르의 첫 인상
마이소르 첫 인상은 좋았다. 생각보다 정갈하고 큰 도시였고, 단 하루지만 일단 오는 길에 소똥이 없는 쾌적함이 맘에 들었다. (물론 목이 칼칼해 대기오염도를 살펴보니 공기 질이 '나쁨'이었다.) 무엇보다도 릭샤 운전수와 더 이상 흥정하지 않아도 되게 해주는 올라가 있었고, 함피에서는 터지지 않던 4G가 마침내 터졌다.
마이소르에는 유명한 궁전이 있다 했는데, 그보다는 우선 숙소에 가서 쉬고 싶었다. (인도를 여행하며 사원이나 궁전을 하도 많이 봐서인지 이제는 별 감흥이 없다. 유럽에서 성당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이들 종교나 문화, 역사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있어야 조금 더 흥미롭게 들여다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부킹 닷컴으로 예약한 꽤 괜찮아 보였는 숙소(1박 350루피)에 찾아갔는데, 사진하고 전혀 딴판인 곳을 안내해주는 게 아닌가! 이거 뭐, 코로나 때문에 차별받는 건가 싶다가도 안에 다른 사람들이 있는 거 보니 어딘가 이상했다. 마이소르에서는 지난 여행을 정리하며 푹 쉬려고 했는데, 창문도 없는데다 바닥과 벽이 맨 시멘트인, 매트리스마저도 먼지가 수북한 감옥 같은 곳에서 도저히 머물수가 없어 배낭을 메고 나왔다. 그리고 당당히 환불을 요구했다. 결론적으로 그들의 잘못이었다. 일부러 내게 그런 방을 준 건 아니고 150루피를 더 내면 일반 호스텔, 그러니까 사진에 나온 방에 머물 수 있었던 것이다. 사진을 보면 그 가격에 거기 올 이들이 없다 생각했는지 허름한 그 방 사진은 일부러 뺀 것이었다.
그리하여 지금 오게 된 호스텔은 Sonder라는 곳인데 4박을 머물기에 아주 좋은 곳인 것 같다. 분위기도 한적하거니와 인터넷도 빠르고, 넓은 정원도 있다. (더 적고 싶지만, 옆에 있는 친구가 타자 소리에 뒤척이기에 우선은 여기까지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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