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ㅡ 8 사랑에 대해 쓰는 이유
사랑에 대해 무어라 쓸 때면 매번 부끄러워지지만, 그럼에도 계속 사랑에 대해 쓰는 이유는, 새로운 언어로 들여다 보지 않으면 이내 무뎌지고 마는 숱한 사랑의 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은 바람에서다. 사랑하는 이와 사랑하는 이가 만들어 내는 일상 속 사랑의 순간들이 매번 기대에 미치치 못하는 모습일지라도, 나는 그것이 모두의 최선이라 믿는다. 사랑의 결과와는 무관하게, 모두는 저마다 최선의 사랑을 한다. 사랑에 대한 나의 최선이 과연 최선인지 고민하며, 그러한 최선이 과연 사랑일 수 있는지 고민하며, 사랑에 대해 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사랑인 것인가. 정답이 없는 질문 앞에서 매번 새롭게 사랑의 내연과 외연을 다듬어 가기를 기대하며 나는 쓴다.
ㅡ 7 사랑이라는 이정표
사랑은 도착지가 아닌 이정표에 가깝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어딘가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의 기로에서 사랑을 택할 수 있을 뿐이다.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말은 변치 않을 영원한 사랑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사랑을 선택하겠다는 다짐이다. 완벽한 사랑도, 완성된 사랑도 존재하지 않는다. 여정에 여정을 더하듯, 사랑에 사랑을 더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사랑에 실패란 없다. 언제나 새로운 시도가 있을 뿐이다.
— 6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이어가지만, 때로 이 말은 얼마나 버거운 것인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이어가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 5 사랑과 마음의 경향
세상과 사람이라는 존재 바깥에 대한 마음의 경향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형성된다. 어른이 되며, 우리는 그러한 마음을 배반당하거나 재확인할 뿐이다. 그러나 확고한 마음을 변화시키거나 배반당한 마음을 치료하는 일이 사랑을 통해 가능하다. 마음은 온전히 내부적인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온전히 외부적인 것도 아닌, 지난 시간과 경험을 한 데 모아 비추는 거울 같은 것이다. 마음이라는 거울은 모든 상처와 아픔과 두려움과 불안, 믿음과 신뢰와 용기와 사랑의 경험과 기억을 존재 앞에 투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두를 이해할 수 있고, 또 모두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과 마음의 경향이 일치할 때, 그러니까 마음을 다해 사랑할 때 존재의 새로운 가능성이 시작된다. 우리는 어둡고 비좁은 마음의 틈새를 비집고 나온 ..
— 4 사랑, 온전함, 용기
사랑하는 이들은 서로에게 온전한 존재가 되려 한다. 이때의 온전함은 완전함이 아니며, 오히려 전적인 불완전함에 가깝다. 사랑은 이대로 괜찮을까 싶은 자신의 모습을, 사랑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드러내는 일이다. 사랑을 하려면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이때의 온전함이 정체된 불완전함의 핑계가 될 수는 없다. 오롯이 자신으로 상대 앞에 서는 이유는 불완전한 서로가 사랑을 통해 함께 성장하기 위함이다.
— 3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부르는 일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부르는 일은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일부로서 타인이 아닌, 타인이 지나온 모든 시간과 경험의 총합으로서 존재를 일컫는 일이다. 먼 바다에서 밀려온 파도를 헤아리듯, 사랑은 한정짓지 않는 것이다. 하나의 파도가 언제나 더 큰 바다의 일부인 것처럼, 존재는 이름 안에 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지향하는 일이다. 모든 존재는 너머에서 출발하여, 이곳에서 시도된다. 사랑 또한 그렇다.
자기 앞의 생을 읽고: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 살 수 있을까?
에밀 아자르가 쓴 《자기 앞의 생》은 참 오랜 기간에 걸쳐 읽었다. 석 달쯤 걸렸나? 요즘 책을 많이 보지 못한탓도 있을 것이지만, 글쎄. 그러지 않았으면 싶은, 소설의 결말이 어느 순간부터 짐작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소설에는 모모라는 10살짜리 꼬마가 나온다. 나중에는 자신의 나이가 14살인 걸 알지만 말이다. 그건 모모가 정신이 이상한 친구여서라기 보다는, 자신의 제대로된 나이를 알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모모의 엄마는 매춘을 하는 여자였는데, 아빠로 추정되는 어떤 미친 남자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그렇게 엄마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모모는 ‘그렇고 그런’ 아이들을 떠맡는 로자라는 아줌마 아래에서 자란다. 로자 아줌마는 이제 할머니에 가까운 나이였는데, 그녀도 젊었을 땐 매춘을 하며 생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