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링크드인을 통해 연락이 온 영국의 한 중소기업과 면접을 봤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기업이었지만, 연락해 온 HR 매니저의 친절함과 더불어 하루 매출이 약 10억 원가량 된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면접은 영어로 이루어졌고, 영국에서 근무하는 리쿠르터와 1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놀라운 점은 면접관인 그의 첫마디가 내 이력서를 받아보지 못했다고 말하며, 해당 포지션에 적합한 이유를 설명해 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HR 매니저에게 내 이력서를 전달해 준 적은 없지만, 또 그쪽에서 달라고 했던 적도 없다. 그러나 링크드인 링크만 부서에 공유해 줬어도 당연히 알 수 있는 정보였는데, 그런 절차가 진행되지 않은 채로 면접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웠다.
마음속으로는 "하하.. 먼저 연락온 건 그쪽 회사인데요.."라고 말할까 싶었지만, 면접 자리인 만큼 예의를 차려 굳이 그런 말을 하지는 않고 적당히 에둘러 대답했다. 그의 반응은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원하는 연봉이 얼마인지도 물어보기 전까지는.
1시간가량의 면접 시간이 지났고, 면접관은 마무리 멘트를 하며 1차 면접 이후 두 번의 면접이 더 예정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만간 연락이 올 것이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리고 2주가 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번 경험을 통해 앞으로는 해외의 중소기업과는 면접은 보지 않기로 다짐했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미 하고 있는 업무가 바쁘고, 그들이 제안하는 급여보다 훨씬 더 높은 수익을 혼자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면접도 호기심 삼아해 본 것이었는데 면접 준비와 그 이후의 대기 시간에 쓰는 시간과 에너지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특히나 지원자를 대하는 해당 기업의 태도와 응대가 실망스러웠다.
오해는 마시라. 이번 한 번의 경험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수많은 입사 제안과 협업 제안을 받았다. 그 중에는 대기업도 있었고, 중소기업, 스타트업도 있었다. 나는 회사의 규모보다는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과 회사의 비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비전이 있으면 규모와 성장은 뒤따를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은 해외의 중소기업일 수록 이러한 통수는 잦았다.
번역가로 활동하던 시절 에이전시들과 면접을 종종 보곤 했다. 그 중 일부는 번역 테스트까지 마치고 최종 통과했지지만, 결국 해당 업체와 실제로 일을 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이 나의 테스트 결과를 이용하여 클라이언트에게 업무 컨펌을 받고, 내가 아닌 더 낮은 급여를 수용하는 다른 번역가에게 작업을 주는 일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해외에 있다는 이유로. 클레임을 제대로 걸 수도 없다는 이유로. 가볍게 연락하고, 가볍게 이용하고 마는 일부 기업들의 행태에 이골이 났다. 이러한 이유로 앞으로는 잘 모르는 기업과는 면접을 보지 않을 예정이다.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쉽게 내주지 않으려 한다. 이미 나의 일을 하기에도 그러한 자원들은 부족하기에. 보다 가치 있는 곳에 해당 자원들을 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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