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 친구들과 함께 글쓰기를 하고 있다. 이제까지 총 3편의 글을 썼는데,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기록용으로 여기에도 남겨본다. 마지막으로 내가 받은 키워드는 '도지'였다.
도지 코인으로 몇 백을 잃던 밤. 터벅거리며 편의점에 갔다. 캔 맥주 4캔을 봉지에 담아 돌아왔다. 희끄무레한 조명이 켜진 책상 앞에 털썩 앉아서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는 깊은 한숨을 푹 내쉬며 '아,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었다. 당시에는 그게 전재산에 가까웠기에 정말이지 눈앞이 캄캄했다.
아니, 그러니까 잘 알지도 못하는 코인을 왜 샀어? 그것도 모두가 가즈아라고 외치는 고점에? 아니, 조금 올라서 수익일 때 왜 안팔았어? 아니, 떨어지기 시작할 때 왜 안팔았어? 왜 그냥 기다리기만 했어? 내 나이 스물 아홉에 맞는 가장 길고 어두운 밤 중 하나였다.
처음으로 도지 코인을 샀던 때로부터 5년이 지났다. 이제는 그 때의 내가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보인다. 그때 왜 도지 코인을 샀을까? 글쎄. 누구나 한 번쯤 도지 코인을 사볼까 할 때가 있지 않나? 도지 코인이 정말 좋아서가 아니라, 도지 코인을 사면 돈을 벌 수 있을 거 같은 마음에서 말이다.
그러나 망설이게 되는 이유는 도지 코인이 사실 디지털 쓰레기나 다름 없어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도 도지의 발행량은 무한이고, 시바견을 흉내내 만든 밈 코인일 뿐만 아니라, 쓰임새조차 거의 없다시피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도지 코인의 현재 가치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시총으로 따지면 11조인데, 코인 순위로는 전체 10위권 안에 든다. 이게 얼마나 큰 금액이냐하면 코스피에 상장된 카카오뱅크 급에 해당하고 SK텔레콤의 시가 총액보다도 큰 금액이다.
이쯤되면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도지는 정말 디지털 쓰레기일까? 그렇기엔 너무 값비싼 쓰레기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도지 코인이 정말로 가치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결국 가치란 시장에 참여하는 이들의 믿음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단지 도지 코인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도지를 손절한 이후 일상의 시계열에 나의 시곗바늘을 올려놓기까지 꽤 많은 다짐과 노력이 필요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지만, 그때는 단지 돈을 잃은 사실에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 그러한 투기 행위에 걸었던 (탐욕이 그득그득한) 희망이 꺾였다는 사실에 허탈 했다.
도지(✟)는 차트에 표시되는 캔들을 의미하기도 하는 동음이의어이기도 하다. 도지형 캔들은 십자가형 캔들인데, 보통 추세 반전 신호로 간주된다. 지나고보니 도지를 산 이후 내 인생의 차트에도 도지형 캔들이 떴다.
누군가는 바보같다 하겠지만, 그때 도지를 사지 않았다면 언제라도 도지 코인을 사는 것과 비슷한 행위를 했을 것이다. 돌파구를 찾고 있었으니까.
그래서인지 도지 코인을 사던 스물 아홉의 나를 자책하지는 못하겠다. 투기의 광풍 속에서 돈을 벌고 싶었던 욕망. 보다 정확하게는 당시의 갑갑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던 간절함. 아마도 지금의 기억을 갖고 그 때로 돌아간다 하여도 똑같은 우를 범하지 않을까.
누구나 한 번쯤 헛된 희망을 품어보기 마련이다. 이내 후회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런 희망 자체가 헛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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