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나는 발리에서 꽤나 친절했고, 베풀었고, 양보했는데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어떤 카르마 때문일까?
무슨 일이 있었냐면 말이다. 우붓의 메인 도로는 워낙에 교통량이 많고 도로 폭이 좁아 일방 통행로로 지정되어 있다. 그런데 고작 몇 백 미터밖에 되지 않는 거리를 가기 위해 10분가량을 우회하는 것은 상당히 비효율적이어서, 많은 현지인과 외국인 운전자들은 역주행 아닌 역주행을 하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역주행자들을 위해 한쪽의 길을 터주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 되어 있기도 하다. 물론, 차량 두 대가 지나갈 폭은 아니어서 바이크들만 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나 또한 현지인들을 따라 역주행을 하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한 바이크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들이받을 것처럼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거의 부딪치기 직전에 멈춘 우리는 서로에게 '뭐 하는 거야?'는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법률적으로 따지자면 역주행을 한 나의 잘못이었지만, 길 한쪽을 비켜주는 암묵적인 룰을 깨고 내 앞에 바이크를 위협적으로 들이미는 그는 또 어떤 마음에서였을까?
우리는 한동안 한쪽에서 대치하고 있었는데, 붐비는 차량으로 인해 바이크를 어떻게 뺄 수도 없었거니와 그가 내게 다음과 같이 말했기 때문이다.
"여기 일방통행이야."
"나도 알고 있어. 저기 조금만 가려고 해."
"일방통행이라고. 못 가."
"아니, 나도 알아."
"안다고?"
"응. 이봐, 지금 나만 가는 게 아니고 다 가고 있잖아. 좀 비켜줘."
"못 간다고, X발."
“뭐라고?”
갑자기 심한 욕을 듣자 당황스러웠다.
"경찰 부를까?"
"뭐? 일단 좀 비켜줄래? 길 다 막히고 있잖아."
"너 이러려고 여기에 왔어? 못 비켜. 돌아가. X발."
"아니, 근데 넌 왜 나한테 이렇게 못 되게 굴어? 왜 그렇게까지 말을 해?"
그는 나를 노려보더니 금방이라도 바이크를 넘어뜨릴 듯 다시 시동을 걸고 다가왔다. 더는 대화가 통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나는 바이크를 돌리며 말했다.
"네가 쌓는 카르마야.“ 1
그렇게 돌아가는데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발리에서 조금 살았다고 현지인처럼 행동해도 되겠지 싶던 다소 오만한 마음과 법을 어기고도 생떼를 썼다는 점 그리고 유치하게 카르마를 이야기하며 그를 저주한 것 모두가 부끄러웠다. 그냥 '미안하다'라고 말하며 쿨하게 웃으면서 돌아서거나 잠시 길을 비켜주고 지나가는 기지를 발휘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무엇보다도 그간 '발리 사람들은 모두 친절해!’라고 말하며 이곳의 모든 경험과 인연들을 미화하던 시도에도 착오가 생긴 바람에 다소 허무한 마음도 들었다. '정말 나는 이러려고 발리에 왔을까?'
그간 나는 발리에서 꽤나 친절했고, 베풀었고, 양보했는데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어떤 카르마 때문에? 사실 나는 그냥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카르마로 해석하든 운명이라 해석하든 그저 일어난 일이라 생각하든 모두 일리가 있으나 또 유일무이한 대답은 아니다.
외곽으로 바이크를 몰았다. 네비게이션이 가라는 최단 경로를 벗어나 크고, 더 크게 우회하며 우붓 한 바퀴를 돌았다. 그렇게 돌고 돌아 거처로 향했다. 그러는 도중 우붓의 일방통행 거리와 윤회의 수레바퀴가 문득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 없다는 점. 다시 그 지점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꼬박 한 바퀴를 돌아야 한다는 점. 그리고 길은 반드시 다시 그곳으로 이어진다는 점.
'그러려고 여기에 왔어?'
'아니, 아닌 거 같아. 나는 단지 저기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야.'
'이미 선택했잖아. 그렇게는 못 가.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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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르마(Karma)는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인과응보의 법칙'을 의미하며, 자신의 행위에 따라 '윤회'의 결과로 이어진다는 인도계 종교에서의 인과율을 의미한다. 발리에서는 카르마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팁을 주고받을 때 가벼운 농담처럼 오간다. 예를 들어, 멋진 밴드의 공연을 보거나 기분 좋은 서비스를 받았을 때 팁을 주면 감사의 의미로 '좋은 카르마를 쌓으셨네요'라고 말하곤 한다. 최근에는 기분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인과응보의 결과가 있을 거라는 식의 얕은 저주의 말로도 쓰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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