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스노클링을 해서인지 9시도 채 되지 않아 잠에 곯아떨어졌다. 새벽 5시 무렵. 멀찍이서 또렷하게 울리는 이맘의 기도 소리에 잠에서 깼다. 정말 피곤하긴 했구나, 이 때까지 한 번도 안 깨고 자다니.
다시 잠을 잘까 하다가 주섬주섬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해가 뜨기 전 까지는 1시간 정도가 남아있었다. 일출을 볼 셈이었다. 불이 꺼진 어두운 거리에는 정말이지 나 혼자 밖에 없었다. 어제 아침 스노클링을 하러 가기 위해 배를 탔던 터틀 포인트 근처로 자전거를 몰았다.
서서히 해가 뜨고 있었다.
구름이 껴서 기대하던 일출은 못봤다. 그러나 이 또한 내가 길리에서 볼 수 있는 나름의 일출이겠거니 싶었다. 기대를 품고 마주하는 자연은 언제나 내게 가르침을 준다. 내가 아닌 모든 것은 내가 기대하는 것과 조금씩 다르다는 것. 그리고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내 뜻 대로 되는 것은 정말이지 거의 없다는 것.
돌아오는 길에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간판에 적힌 문구와 그 아래서 깊은 꿈을 꾸며 잠을 자는 현지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EASY TO COME, HARD TO LEAVE (사랑과 돈, 오기는 쉽지만 떠나기는 어려운 것)
사랑과 돈은 정말 오기는 쉽지만, 떠나가기는 쉬운 것인가? 나는 어쩐지 반대이다 싶었다. 그러나 이내 또 아무렴 어떠랴 싶었다. 사랑과 돈 그리고 꿈. 우리를 힘겹게 하고 또 행복하게 하는 것들. 그리하여 힘겹고도 또 행복한 우리의 삶이 여기에 있으니까.
사실 이러한 가게는 작은 노점을 빙자하여 일종의 마약인 머시룸을 파는 곳이다. 가게 한 쪽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다.
🍄 MAGIC MUSHROOM (마법의 머시룸)
DON'T WAIT FOR THE PERFECT MOMENT, TAKE THE MOMENT AND MAKE IT PERFECT (최고의 순간을 기다리지 말고, 지금을 최고의 순간으로 만드세요)
어쩐지 씁쓸한 문구다 싶었다. 마법의 무언가가 아니면 최고의 순간을 만들 수 없는, 최고가 아닌, 최고를 위한 잠재적인 상태로써의 현실을 반증하는 것 같아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최고의 순간은 기다리면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또 나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그 두 가지가 모두 동시에 맞아 떨어져야 한다고. 그러니 아이러니하게도 최고의 순간 따위는 바라지 않고 묵묵히 지금의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 최선이자 곧 최고의 순간들일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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