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햇살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꾸따 비치. 그곳에서 존스를 처음으로 만났다. 어디서 한국말을 배웠는지 능글맞게 형 어서와!라고 말하는 존스는 나의 서핑 강사다. 발리에서 서핑을 할 수 있는 비치로는 꾸따, 창구, 울루와투 등이 있는데 그 중 초보자에게 가장 좋은 곳이 바로 꾸따였다.
서핑은 처음이었고 처음엔 보드에 제대로 엎드리는 것도 이어 중심을 잡고 일어서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지금도 고작 1주일을 배운 초보 서퍼이지만, 발리에서 많은 이들이 서핑에 빠지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서핑을 하다보면 때로는 좋은 파도, 때로는 좋지 않은 파도가 밀려온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내게 맞는 파도와 내게 맞지 않는 파도가 밀려온다. 아직까지 그걸 잘 알아보지 못하는 나는 모든 파도에 잔뜩 긴장하고 보드에 엎드린다. 그럼 존스는 릴렉스, 브로.라고 말한다.
한 번은 존스가 흥분하여 온다! 준비해!라고 외쳤던 적이 있었다. 뭘 그렇게 흥분하나 했는데 정말 널 위한 최고의 파도야! 준비해!라고 말하면서 다그치는 것이 아닌가. 형이라 하다가 갑자기 너라고 하니 기분은 좀 그랬지만, 어쨌거나 나는 온몸과 마음을 집중했다. 바로, 지금이구나. 이 기회를 놓치지 말자. 제발. 속으로 간절히 되뇌었다. 파도가 보드를 밀어내는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고 파도와 함께 기분 좋게 밀려났다. 적절한 비치에, 적절한 순간에 있다면, 내게 맞는 파도를 탈 수 있는 기회는 반드시 온다. 그러니 기다려야 한다. 그게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그러다 마침내 그 기회가 기어코 왔을 때, 기다렸던 최고의 파도다 싶을 때 준비했던 대로 일어서면 된다.
오늘도 보드에서 넘어지고 물에 빠지며 바닷물을 맛본다. 존스가 말한다.
형, 괜찮아? 올라와.
파도온다.
레디?
패들링!
지금이야, 일어서!
꾸따 비치 하늘에서 사진을 찍는다면 파도와 그 위에서 반짝거리는 눈부신 햇살이 담길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파도 아래 보드와 함께 널브러지거나 유유히 파도를 타는 한 무리의 서퍼들이 보일 것이다. 그들이 기다려온 최고의 파도와 함께 넘어지고 또 다시 일어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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