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준비들이 거의 끝났다. 공항에서의 PCR 검사만 무사히 통과된다면, 발리 도착이다. 드디어 떠난다. 부디, 무탈하길. 오랜만에 나의 안부를 빌어본다.
얼마 전, 함께 개발 프로젝트를 하던 동료들을 만났다. 술 한잔 기울이는 자리에서 이번에 해외로 나가게 되었다 말하며, 그런데 전과 같은 설렘은 별로 없는 거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그때 맞은 편에 있던 J는 제 주변에도 그렇게 말하는 형들 있는데, 그러고 어쨌거나 또 떠나더라고요 하며 웃었다.
그런 거 같다. 나도 이제는 정말이지 한국에서 머물며 살 계획이었으나, 어째 자꾸만 밖으로 나갈 기회들이 주어진다. 전과 같은 설렘은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설레는 것도 사실이다. 더군다나 여행을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지금 상황에서는 원하는 거의 모든 곳에 머물며 일도 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떠날 수 있을 때 떠나는 게 맞다. 또, 언제든 돌아올 수 있으니 말이다.
소설가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고 이것이 나는 왜 자꾸만 떠나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하나의 대답일 수 있겠다.
자기 의지를 가지고 낯선 곳에 도착해 몸의 온갖 감각을 열어 그것을 느끼는 경험. 한 번이라도 그것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일상이 아닌 여행이 인생의 원점이 된다. 일상으로 돌아올 때가 아니라 여행을 시작할 때 마음이 더 편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일 것이다. 이번 생은 떠돌면서 살 운명이라는 것. 귀환의 원점 같은 것은 없다는 것. 이제는 그걸 받아들이기로 한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중
요즘 긴장을 했는지 새벽 잠을 설친다. 발리야 안전한 관광지지만, 낯선 곳이어서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이번 여행은 전과 달리 떠남이나 도착에 큰 기대나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 이번 여행을 보다 정확하게 정의하자면 그저 터를 옮겨 가는 것에 가깝다. 당분간은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 많은 상상을 하지 않고, 그저 펼쳐지는 일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한다. 여행은, 낯선 곳에서의 정착은, 그냥 그래도 된다는 일종의 마음가짐을 체험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 뜻대로 되는 것보다 나의 뜻과 무관하게 흘러가는 흐름이 압도적인 곳에서 때로 더 나은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여행은 어쨌거나 유연하게 흘러갈 수밖에 없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러한 체험을 통해 여행자는 비슷한 마음가짐들을 갖게 된다.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이번 여행을 통해 지금보다 더 나은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껏 움켜쥐고 있던 많은 마음들을 내려놓는 것이 그 시작점일 지도 모르겠다. 가방에 들어갈 짐들을 고르고 또 고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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