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시작하기란 어렵고, 이를 꾸준히 하는 건 더 어렵다. 이보다 더 어려운 건 실패했지만 다시 시작하고, 이를 꾸준히 반복하며 성장하는 것이다.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일은 넘어지지 않고 일어서 있는 것보다 힘든 법이다.
서른 셋. 발리에서 생일을 맞는다. 평소 생일이라는 날을 크게 게의치 않지만, 축하 인사를 건네준 지인들 덕분에 실감이 났다.
지나간 나의 20대
돌이켜보면 20대 후반의 내 삶은 실패와 거절로 가득했다. 실패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건 거절이었다. 거절은 시도할 수 있는 기회가 더는 주어지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정확히 3년 전. 서른이 되어 맞는 생일에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지나간 20대의 시간들을 조급히 하나의 선으로 이으려 초조해하지 말자. 점들. 조각들. 파편들. 내가 지나온 시간과 경험들이 언젠가는 이어질 거라고 믿고 존버하자.
코로나가 터지기 전, 내가 했던 마지막 도전은 여행 크리에이터가 되는 것이었다. 여행을 업으로 삼는 것은 오래 간직해온 꿈과 바람이었다. 그렇게 새 배낭과 최신 고프로를 구매하고 인도행 티켓을 끊었다. 그러나 이내 세계를 휩쓴 코로나가 터졌고, 여행 3개월 차에 다시 인천 공항으로 돌아와야 했다.
내 인생의 점들은 언제쯤 선이 되는 것일까. 초조했다. 그러다 김애란의 <서른>을 읽고서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소설 속 수인에게는 미안했지만 그녀로부터 큰 위로와 동질감을 느꼈다.
부푼 꿈을 안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저는 제가 뭔가 창의적이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며 살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지금 이게 나예요. 그래서 열심히 살았느냐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쩌다, 나, 이런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 언젠가 이 시절을 바르게 건너간 뒤 사람들에게 그리고 제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나, 좀 늦었어도 잘했지. 사실 나는 이걸 잘한다니까 하고 말이에요. 하지만 당장 제 앞을 가르는 물의 세기는 가파르고, 돌다리 사이의 간격은 너무 멀어 눈에 보이지조차 않네요. 그래서 이렇게 제 손바닥 위에 놓인 오래된 물음표 하나만 응시하고 있어요. 정말 중요한 '돈'과 역시 중요한 '시간'을 헤아리며, 초조해질 때마다, 한 손으로 짚어왔고, 지금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그것. '어찌해야 하나.' 그러면 저항하듯 제 속에서 커다란 외침이 들려요. '내가, 무얼, 더. - 김애란 <서른> 중
발리에서 맞는 생일
3년이 지난 이제는 많은 점들이 선으로 이어져 있음을 본다. 기자가 되지 못했지만 번역가가 되었고, 세계적인 작가가 되지는 못했지만 좋아하는 글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10만 유튜버는 못됐지만 언제든 원하는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여건을 확보하게 되었다. 여전히 다수와는 조금 다른 삶의 양상에 불안할 때도 있지만 더는 초조해하지 않는다.
서른 셋.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나이다. 더는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간다. 요즘 누가 몇 살이냐 물어보면 나는 정말이지 몇살인지 생각해 볼 정도로 나이를 생각하지 않는다.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한국 사회에서의 나이 타령. 결론적으로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에 대해 고민하며 시간을 흘려보낼 바에, 한 번 더 실패하는 게 훨씬 낫다는 판단이다.
돌이켜보면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은 감사한 일이다. 실패에는 자원이 필요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은 능력과 여건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패할 수 있을 때 마음껏 실패할 수 있는 건 축복이다.
전에는 실패하지 않고자 했다면 이제는 빠르게 실패하고 더 많이 성장하고자 한다. 실패의 여부가 아니라 성장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무언가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않고 그냥 할 수 있게 된다.
김소연 시인의 말처럼 이전과는 다른 실패, 다른 방식의 시행착오, 새로운 실망감을 갈망하는 삶을 살고 싶다. 넘어질 것이 두려워 걷는 법을 배우지 않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한 번 넘어졌다고 해서 다시 걷기를 포기하는 것은 얼마나 아쉬운 일인가. 삼삼한 나이를 지나는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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