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해가 뜬지 한참이 지난 10시가 넘어서야 침대에서 겨우 기어나와 노트북을 켰다. 여러 음악들을 듣다가 최종적으로 정착하게 된 지드래곤 <삐딱하게>. 이 노래가 2013년에 나왔으니, 지금으로부터 무려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라떼는 말이지... 빅뱅과 소녀시대의 시대였는데 말이지...
2. 지디는 사랑하는 누군가와 이별을 했나보다. 그래서 '영원한 것은 없다'며, '사랑같은 것은 집어치워'라고 말하며, 바깥으로 나가 삐딱하게 행동한다. 이 노래가 참 좋은 것은 결국에 '그래서 그대가 보고 싶어요. 나와 친구가 되어 줄래요.'라고 솔직하게 말한다는 것이다.
3. 마음을 다해 그때의 순간이 전부인듯, 그래서 영원한 듯 믿어보았다면 그것들이 깨어질 때 얼마나 큰 상처를 입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조금 다르게 보인다는 것도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그러니 성급히 지난 믿음들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사랑은 없고, 의미도 없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지금의 고백과는 무관하게 그때에는 '사랑과 의미와 영원이 있었'으니까. 믿음의 양극단은 맞닿아 있다. 없다는 것에 대한 강한 믿음은, 있다는 것에 대한 강한 믿음을 반증한다. 무엇이 정말로 없었다면, 그것을 강하게 긍정 또는 부정할 수 있을까? 지금에서보면 영원하지 않았던 그 순간은 영원하다. 사랑했던 순간들은 매순간이 영원한 찰나였던 것이다.
4. 뮤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삐딱하다'는 건, '나는 답답하고 외로워. 그러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겠어. 나 좀 알아봐줘.'라는 일종의 적극적인 몸부림이다. 지디 같은 성격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시비를 걸기도 하고, 밥상을 엎어버리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비슷한 감정을 느낄 때 짜증을 내거나 심술을 부리기도 할 것이다.
5. 이러한 행동은 사실 심리학에서 스트레스라 일컫는 '해가 되는 것으로 판단되는 외부의 자극에 대한 반응'들 중 하나에 해당한다. 스트레스의 정도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위의 방식이 아니라도 자신만의 취미 생활을 하거나, 좋아하는 친구를 만난다거나, 운동이나 명상을 하거나 등 보다 건강한 방법으로 스트레스에 대처할 수 있다.
6. 갑자기 뜬금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파이썬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에는 이러한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법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스트레스는 아니고,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취할 수 있는 행동들을 지정해두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프로그램에 에러가 발생해 동작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작동하게 하는 것이다. 나조차도 에세이를 쓰며 코드를 쓸 줄 몰랐지만.. 대략 이렇게 쓸 수 있다.
try:
if("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return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세요!"
elif("나갈 힘이 없다면"):
return "집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보세요!"
elif("스트레스가 너무 크다면"):
raise Stressful("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어요.")
except Stressful as e:
return (e.message)
7.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이런 식으로 예기치 않은 상황(=스트레스)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면, 프로그램(=일상적인 우리의 삶)이 동작을 멈추는 경우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듯, 개발에서도 에러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조차 없게 되어, 이러한 예외 처리는 꼭 필요한 것으로 간주된다.
8. 스트레스에 이러한 분석적 접근을 취할 필요까지는 없지만(그것 자체가 스트레스 아니겠는가..), 한 번쯤 자신이 스트레스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은 도움이 될 거 같다. 그것은 어쩌면 하나의 습관이 되어 있을 것이기에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을 지라도 바꾸기는 힘들 수 있다. 그러나 일단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렇게 행동하고 있었구나' 하는 인식을 갖게 될 수 있다.
9. 우리는 나이를 먹으며 크고 작은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법들을 경험해간다. 방법을 안다고 충격이 덜한 것은 아니지만, 점차 나이가 들며 보다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게 된다. 인생은 비극도 희극도 아니지만, 비극에 조금 더 가까운 사실을 깨닫게 될 때쯤, 그리하여 더는 삐딱하게 행동하는 일은 없게 되는 지혜를 갖추게 될 때쯤에는, 문득 삐딱하게 행동했던 그때 그 순간들이 그립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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