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올해를 시작할 때쯤에야 분주하게 거처를 옮겼고, 새로운 환경에서 상당히 많은 인풋들이 있었다. 부트캠프에서 백엔드 개발자가 되기로 결심한 나는 열심히 파이썬과 장고를 공부하고 있다. 정말이지, 하루 12시간이 넘게 모든 걸 갈아 넣고 있다.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하지만, 터미널을 통해 들어오는 리퀘스트에 제대로 반응하는 코드들을 보며 초심자의 만족감을 느끼는 요즘이다.
2. 작년 한 해는 존버의 해였다. 그 누구에게도 모든 것을 제대로 털어놓지 못했던 만큼, 숨 가빴고, 힘겹기도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많은 아웃풋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리하여 결과론적인 관점에서 믿게 되었다. 파편 같이 삶의 흩어진 모든 점들이 언젠가는 모두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을. 그러니 그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믿음을 놓지 말기를.
3. 돈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를 기능하게 하는 매개체이자 숭배의 대상인 돈.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돈으로는 가장 소중한 것을 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돈이 아무리 많더라도 시간을 살 수 없고, 건강을 살 수 없고, 사랑을 살 수 없다. 반대로 말하자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가장 소중한 것이다. 물론, 정말 현실적으로 가장 소중한 것들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하위 카테고리들의 자원들이 적절하게 뒷받침해줘야 하겠지만 말이다. 정리하자면 돈은 중요하지만 삶의 지향점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4. 이제, 혼자서 하는 일들이 그다지 재밌지가 않다. 혼자여서 자유롭고 즐거웠던 20대의 도전(대부분이 여행이었다)들이 30대 중반을 향해 가는 지금에서는 아련하게 느껴진다. 참 감사한 것은 그런 무모했고, 또 자본주의적으로 성과도 없었던 그런 시간을 응원해준 가족과 친구들이 곁에 있었다는 것이다. 올해는 그런 마음들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다.
5. 토요일인 어제는 집 청소를 하고 한숨 돌릴 겸 밖으로 나갔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집 근처에 시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는 시장의 어느 돈가스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주머니는 혼자서 요리와 설거지, 서빙까지 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음식이 생각보다 늦게 나왔어도, 생각보다 소스가 짰어도, 계산을 위해 건넸던 카드에 물기가 잔뜩 묻어 되돌아왔어도, 문을 열고 나오며 걸친 패딩에서 기름 냄새가 찌들어 있었어도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6. 매일 아침 2호선을 타고 선릉역으로 간다. 코 앞에 다른 출근러의 뒤통수를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는 숨막히는 아침을 반복하며, 휩쓸리듯 개찰구를 들어왔다 빠져나가는 인파들로부터 어쩔 수 없음과, 과연 어쩔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게 된다. 개발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던 이유를 잊지 말아야지. 결국, 모든 점들은 이어질 것이다.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아주 큰 기대라면, 이제 나의 점들과 다른 누군가의 점이 만나는 선을 함께 그려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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