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 들었던 기술 윤리 수업에서 교수님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셨다. 꽤나 흥미로운 질문이었는데,
자율 주행차가 도로를 달리고 있다. 커브 길을 도는데 길가 한복판에 사람들이 서있다. 빠르게 달리고 있는 터라 브레이크를 밟아도 사람들을 쳐서 죽게할 수 밖에 없는 속도이다. 반대 방향은 낭떠러지이다. 즉, 자율 주행 머신은 속도를 줄이다 사람들을 그대로 들이 받든지, 또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상황을 택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율 주행차는 어떤 선택을 하도록 설계되어야 하는가?
아마도 이 질문은 기말 고사 시험 문제였던 거 같다. 그래서 내가 뭐라고 대답했을까.. 충돌 직전 트랜스포머처럼 변신하여 공중으로 뛰어오른다는 것 정도로 적었으려나? 그래서 학점이 그랬나 맞았나.. 여튼, 분명한 건 여기엔 명쾌한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고민의 연장선에서 최근에 어딜가나 찾아볼 수 있는 '스마트'하다는 표현에 대해 생각해본다. 우리와 매일을 같이 하는 스마트폰에서부터 최첨단 인공 지능에 이르기까지 각종 최신 기술에는 '스마트'라는 수식어구가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스마트하다는 건 대체 뭘까? 스마트한 기술은 저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스마트(Smart)를 직역하면 지적이고 똑똑하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기술은 인간보다 많은 정보를 단연 빠르게 처리한다. 인간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2^100은 집에서 쓰는 노트북으로도 1초도 걸리지 않는 연산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연산 기술이 비밀번호를 무차별적으로 대입해 해킹하는 데 악용된다면 어떨까? 그래도 이 기술은 여전히 스마트한가?
기술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윤리적 문제를 맞닥뜨리게 된다. 기술의 사용은 인간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말하는 건, 너무 나이브한 발상이다. 나는 오히려 인간의 의지가 기술에 의해 통제된다고 생각하는 부류다. 생각해보자. 내가 스마트폰을 통제하는 것일까? 아니면, 스마트폰이 나를 통제하고 있는 것일까?
인류 문명은 기술과 함께 발전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인공 지능 기술이 정점에 달하면 기술과 윤리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지점이 올 것인데, 그때가 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윤리 또한 기술에 포섭될지도 모른다. 즉, 앞선 예시에서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에 사람들이 있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므로 그들을 들이 받는 게 맞다'는 설계 방식이 공인된다면 어떨까? 또는 '여러 사람이 죽는 것보다는 운전자 한 사람만 죽는 게 낫다'는 판단이 받아들여진다면 어떨까? 이는 기술적 판단이 곧 윤리의 기준이 되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은 없다. 그러나 더 나은 윤리적 판단에 대한 고민과 대응 방안이 분명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기술 개발자들만의 몫이 아니라 한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몫이기도 하다. 위와 같은 경우, '커브 길이며 동시에 우측이 절벽이라면 급하게 멈추어도 사람을 죽게하지 않을 수 있는 속도로만 주행 속도를 제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당장의 사고를 피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 뿐만 아니라, 어떠한 윤리적 판단을 사회적 합의로 도출해 낼(또는 내고 있는가 하는) 것인가다. 즉, '스마트'하게 보이는 신기술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장려하고 발전시키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윤리의 문제는 동일한 수준으로 장려되고 논의되어야 한다. '스마트'하다는 표현은 단지 '오!'라는 감탄사로 귀결되는 똑똑함이 아니라 '더 나은 인간 사회를 위한 윤리적 판단'을 아우르는 성숙한 논의를 함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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