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광활한 우주 속 하나의 행성이다. 그러나 우주의 중심이 지구라 믿었던 때가 있었다. 16세기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가 나타나 '세상의 중심은 지구가 아니라 태양입니다.'라는 혁명적인 주장을 하기 전까지 말이다. 물론, 결국에 그들이 맞았다. 그러나 당시 우주의 중심이 자신들이 믿는 신, 아니 정확하게는 자신들이라는 오만함에 빠져있던 중세의 종교 지도자들은 이들을 재판대에 올리기까지 했다.
지구를 63억 킬로미터 밖에서 보면 다음과 같다. 20여년 전 우주 탐사선이 태양계를 벗어나며 찍은 사진인데, <코스모스>를 쓴 칼 세이건은 이 사진을 보고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Blue Dot)'이라 표현했다.
다음은 칼 세이건의 글이다.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 봤을 모든 사람들, 예전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삶을 누렸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들,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데올로기들, 경제 독트린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모든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들,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 교사들, 모든 타락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 지도자들, 인간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지구는 우주라는 광활한 곳에 있는 너무나 작은 무대이다. 승리와 영광이란 이름 아래, 이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차지하려고 했던 역사 속의 수많은 정복자들이 보여준 피의 역사를 생각해 보라. 이 작은 점의 한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이, 거의 구분할 수 없는 다른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잔혹함을 생각해 보라. 서로를 얼마나 자주 오해했는지, 서로를 죽이려고 얼마나 애를 써왔는지, 그 증오는 얼마나 깊었는지 모두 생각해 보라. 이 작은 점을 본다면 우리가 우주의 선택된 곳에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우리가 사는 이곳은 암흑 속 외로운 얼룩일 뿐이다. 이 광활한 어둠 속의 다른 어딘 가에 우리를 구해줄 무언가가 과연 있을까. 사진을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들까? 우리의 작은 세계를 찍은 이 사진보다, 우리의 오만함을 쉽게 보여주는 것이 존재할까? 이 창백한 푸른 점보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을 소중하게 다루고, 서로를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는 책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가늠할 수 없는 우주 공간 속에서 지구는 공전과 자전을 하며 궤적을 그리고 있다. 그런 지구의 자전축이 23.5도 가량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하루와 계절이 순환한다. 우리는 그 흐름에 맞춰 아침에 일어나 씻고, 밥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일터에 갔다가, 지는 해와 함께 퇴근을 하고, 잠을 잔다. 그리고는 어느덧 봄이구나, 여름이구나, 하는 것이다.
우리는 창백한 푸른 점 속에서 티끌만도 못한 질량을 갖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우주의 입장에서 우리는 먼지, 아니 미립자정도에 불과한 존재들일 것이다. 중세의 종교가, 근대의 이성이, 현대의 자본이 역사를 이끌어가는 동안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바람직한 삶의 표본'이란 것은 크게 달라져왔다. 저 우주 바깥에서 누군가 그런 모습을 지켜봤다면야, 그야말로 현타가 오지 않았을까.
<사람, 장소, 환대>를 쓴 김현경은 인류가 '환대'를 통해 사회 속에서 자리를 갖는 '사람'이 된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숨가쁜 경쟁을 통해 유지되지만, 우리의 삶은 그러한 경쟁에서 비껴나 있는 크고 작은 환대들로 유지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바쁜 출퇴근 시간임에도 누구가는 닫히려는 엘리베이터의 문을 열어 주었고, 프로젝트로 지쳤을 옆자리의 동료는 간식을 건네며 안부를 물어 주었고, 가족과 친구들은 오늘도 고생했다며 서로를 다독여주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들이 하루를 버틸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일들을 모두 시선을 비껴 너머를 바라보는 일과 닮았다.
보다 넓은 마음, 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휩쓸리지 않아야 한다. 여유가 없는 하루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한 번씩,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도 작은 환대의 공간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 푸르고 창백한 작은 점 위에 발붙이고 있는 동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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