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콕의 영화 <이창>의 주인공 제프는 다리에 깁스를 한 채 방 안에서 이웃들의 사생활을 훔쳐본다. 맞은 편 건물에는 발레리나, 과부인듯한 중년의 여인, 감성적인 작곡가, 테라스에서 잠을 청하곤 하는 노부부와 아픈 아내와 함께 사는 쏜월드가 있다. 비 오는 어느 날, 제프는 쏜월드의 집에서 살인 현장으로 의심될 만한 장면을 목격한다.
제프는 사진 기자로 일했던 경력을 살려, 쌍안경과 카메라까지 동원해 가며 쏜월드를 감시한다. 제프와 그의 애인 리사, 간병인 스텔라까지 가세 해 쏜월드를 훔쳐 보는 동안 쏜월드의 살인 혐의는 점점 짙어져 간다. 제프는 경찰인 친구에게 수사를 의뢰하지만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급기야 리사는 쏜월드에 집에 무단 침입을 시도한다.
하지만 리사는 쏜월드에게 발각되고, 쏜월드는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리고선 창문 너머로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제프를 발견한다. 쏜월드는 제프의 집으로 찾아온다. 제프는 카메라 플래쉬를 터뜨려가며 저항해 보지만 아픈 다리 때문에 속수무책이다. 화가 난 쏜월드는 제프를 창문 밖으로 밀어뜨리려 한다. 그러나 때마침 형사들이 들이닥치고, 쏜월드는 체포된다.
쏜월드가 제프를 발견하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순간적인 오싹함을 선사한다. 이 장면이 그토록 섬뜩한 이유는 바로, 제프와 관객이 점하던 독점적 시선의 권력 구조가 깨지기 때문이다. 쏜월드가 제프를 바라보는 순간, 둘은 동등한 위치, 혹은 훔쳐본다는 비도덕적인 자의식 아래, 제프가 쏜월드 아래 놓이게 된다. 이때 제프를 발견한 쏜월드는, 관객을 발견하기도 한 것이다. (제프는 다리를 다쳐 행동반경과 그 시선의 범위가 극히 제한되어있었고, 이는 곧 관객의 시선과 제프의 시선을 거의 완벽하게 동일시 할 수 있도록 의도되었기 때문이다.) 제프는 자신의 방 안에 들어 온 쏜월드를 향해 플래쉬를 터뜨려 그의 눈을 멀게 하려 한다. 이는 쏜월드가 제프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쏜월드의 시선을 박탈해 권력을 빼앗으려는 시도 이기도 하다.
시선은 하나의 권력이며, 누군가를 은밀하게 바라본다는 건 권력의 정점에 선 일종의 감시자가 되는 것과 같다. 일반적으로 권력으로서의 시선은 은둔을 전제로 한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경우거나, 제프처럼 상대가 자신을 보지 못한다는 감시자 위치에 있을 때 권력으로서의 시선은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제프와 관객은 모두 권력자다.
선글라스를 쓴 채 벤치에 앉아 거리의 행인들을 훑어보는 것이나, 페이스북을 통해 타인의 사생활을 엿보는 건, 제프가 영화에서 창문 너머로 이웃들을 훔쳐 본 것과 같은 맥락에서 관음 행위라 할 수 있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어떠한가? 이는 자신의 관점을 통해 상대를 재구성하고, 그 프레임 속에 대상을 정지시키는 강력한 권력의 행사이기도 하다.
우리는 시선을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세상은 시선을 통해 인식된다. 눈은 사실 수용 기관에 불과하다. 망막에 맺힌 상은 시각세포를 통해 뇌로 전달되어 이해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시선을 통한 권력의 행사는 단순히 무의식적인 것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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