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피사체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것이 아니다. 사진은 일종의 해석이며, 의미부여다. 사진은 사진가와 피사체 간의 상호작용이다. 특별히 캔디드 사진은 사진가의 자세에 많은 부분이 좌우된다 할 수 있다.
어떤 마음으로 사진을 찍을 것인가? 사진을 찍는다는 건 공간과 시간으로부터 대상을 단절시키는 걸 의미한다. 그러한 권리가 사진가에게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대상을 그것으로부터 어떻게 분리시킬 것인가? 그래서,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사진은 때로 대상의 삶의 윤리와 대상을 둘러싼 이해 관계와 충돌한다. 그것은 글의 윤리와는 또 다른 것이어서, 글에서는 어느 정도 비껴갈 수 있는 충돌이 사진 앞에서는 필연적인 경우도 있다. 단순한 피사체로 치부되기 쉬운 카메라 앞의 대상은 아무렇게나 해석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에서 끝없이 유동하는 고유한 존재다.
수전 손택이 말하듯, 사진은 스스로 윤리나 도덕을 형성하지는 못한다. 사진은 외양을 전달할 뿐이다. 윤리나 도덕은 전적으로 관람자의 의식 수준에 달려있다. 사진가는 다만, 그것에 글을 조금 보태거나, 자신의 삶으로써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찰스 하버트의 사진 <맹인>. 하버트는 맹인들을 돕는 뉴욕의 라이트하우스에서 어린이들을 촬영했다. 하버트는 한 소년이 매일 오후가 되면 건물의 좁은 틈에서 비치는 햇빛을 찾아와 그 온기를 느끼는 모습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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