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 디어›의 첫 장면을 가득 채우는 것은 뛰고 있는 심장이다. 이 장면은 말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심장이다. 심장은 언제나 제 주인만을 위해 뛰고, 계속 뛰기 위해서만 뛴다. 타인의 몸속에서 뛸 수 없고 타인의 슬픔 때문에 멈추지도 않는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라면 인간은 자신이 자신에게 한계다. 그러나 이 한계를 인정하되 긍정하지는 못하겠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슬퍼할 줄 아는 생명이기도 하니까. 한계를 슬퍼하면서, 그 슬픔의 힘으로, 타인의 슬픔을 향해 가려고 노력 하니까. 그럴 때 인간은 심장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슬픔을 공부하는 심장이다.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이기적이기도 싫고 그렇다고 위선적이기도 싫지만, 자주 둘 다가 되고 마는 심장의 비참. 이 비참에 진저리 치면서 나는 오늘도 당신의 슬픔을 공부한다. 그래서 슬픔에 대한 공부는, 슬픈 공부다. (~p.28)
사랑의 관계 안에서는 권력의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 물론 덜 사랑하는 사람이 강자,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가 된다. (...) 사정이 이러하므로 사랑에 대해 언제나 던져야 할 질문 중 하나는 이것이다. 어떻게 지배 없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은 상대방을 지배해본 적이 없다고 믿는 사람도 있으리라. 어쩌면 '지배하지 않는' 그가 자기도 모르게 하고 있는 사랑 중 하나는 '미성숙한' 사랑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미성숙한 사랑이 '지배하는' 사랑의 반대인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일 뿐이라는 데 있다. (...) 그리고 이번에는 그대의 몫이 더 클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만, 끝내 완전히 동일해질 수 없을 둘 사이의 상처와 고통의 불균형을 남은 생을 통해 가까스로 맞춰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상처와 고통의 양을 저울 위에 올려놓는 일이 비정한 일인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비정한 일은, 네가 아픈 만큼 나도 아프다고, 그러니 누가 더 아프고 덜 아픈지를 따지지 말자고 말하는 일일 것이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실제로 덜 아픈 사람이다. 지배하는 사랑과 미성숙한 사랑의 공통점 중 하나는 저울을 사용할 줄 모르거나 사용하지 않으려 하는 데 있다.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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