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떠남은 영원할 것 같았던 익숙한 일상의 시간과 공간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하나의 가능성을 인식하게 한다. 그리하여 잠시나마, 정신없이 달려가던 삶의 궤적 위에서 달음질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게 한다. 떠나고 싶지 않은 애틋한 순간에 대한 아쉬움이 다가올 변화에 대한 기대로 대체되지 않는 순간에도 떠나가야 할 시간은 다가온다.
작은 매듭을 하나 만들어 둔다. 기약期約하는 것이다. 글을 남겨 둔다. 기억하려는 것이다. 어쩌면 기약하는 것은 기억하려는 것과 같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2. 떠남을 앞두고 릴케의 말을 곱씹어 본다.
당신은 아직 매우 젊고, 모든 일을 시작하기 전입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당신에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당신 마음속의 해결되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해서 인내를 가져주십시오. 그리고 물음 그 자체를 닫혀 있는 방처럼, 아주 낯선 말로 쓰인 책처럼 사랑해주십시오. 지금 당장 해답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아마도 당신이 해답에 맞추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지금 당신에게 그 해답이 주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산다는 것은 긴요한 일입니다. 지금은 물음을 살아가십시오. 그렇게 하면 아마도 당신은 차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먼 미래의 어느 날, 해답 속으로 들어가서 해답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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