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의 단편 소설 <호텔 니약 따>는 함께 해외여행을 떠난 단짝 친구 이야기다. 한국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여겨 왔으며, 여행 초반에만 해도 결코 부딪칠 일이 없을 듯싶었지만, 그들-은지와 서윤-도 결국 다투고 만다. 누군가 영어를 좀 더 잘한다는 이유로, 누군가 계속 물병을 들고 다녔다는 이유로, 누군가 관념적인 생각들을 필터링 없이 줄줄이 쏟아냈다는 이유로, 말하지 못한 여러 사소한 이유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서로를 증오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여행지에서는 왜 사소한 일이 중요해질까
오래 붙어 있으면서, 서로 다른 이들이, 여행의 방식과 양상에 대해 거의 같은 결정을 내려야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과정에서 사소한 차이와 이해, 양보가 쌓이고 쌓여 더는 사소한 일이 아니게 되기 때문은 아닐까. 그럼에도 여전히 하나씩 따지고 보면 너무도 사소한 것들이어서, 차마 구차하게 말로 할 수 없기에 필연적으로 부딪치게 되는 건 아닐까. 그 과정에서 외국이라는 여행지에서 이러한 갈등을 회피할 수 있는 물리적, 심리적 공간이 독립적으로 확보되지 못하며, 동시에 육체적으로 쉽게 피곤해지기 때문은 아닐까.
사소한 이유로, 혹은 너무도 중요한 이유들로
보편적으로 사소해 보이는 사건에 대해 특별히 주체하지 못하는 감정적 표출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둘의 갈등은 캄보디아에서 절름발이 아이가 은지의 짐을 대신 지고 가자 서윤은 소리를 지르는 부분에서 절정에 달한다. 이유를 알 리 없는 은지는 당황스러울 뿐이지만, 서윤은 몇 년 전 돌아가신 자신의 할머니가 생각났던 것이다. 반대로 소설에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았지만 은지가 음악을 그토록 좋아하는 일과 또 그녀가 호텔 니약 따에 가고자 했던 이유에도 사연이 있을 것이다. 별 거 아닌 거 같은 일이 실은 무척 중요한 일일 수 있는 것이다.
김애란 <호텔 니약 따>
크게 보면 '함께 여행 갔다가 사소한 이유로 싸웠다'로 요약될 수 있는 그다지 특별할 거 없는 줄거리다. 그러나 <호텔 니약 따>를 읽고 나면, 누구나 사소한 듯 하나 동시에 너무도 중요한 이유들을 저마다 가슴속에 품고 있기 마련이다는,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된다. 어쩌면 누군가를 애정한다는 것은 이해를 통해 가능한 것이 아니라, 사소함에 뒤에 감춰진 중요함을 결코 짐작할 수 없어도, 그러려니 하는 태도를 갖기로 할 때 가능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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