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란 것을 전혀 믿지 않지만, 때로는 운명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야 하는 순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삶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정체된 순간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그 무엇을 움켜쥐지 않았기에 어쩌면 삶이란 게 멈춰버린 것이고, 그것을 움켜쥐어야만 삶이 다시 흘러가기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요.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번 생은 떠돌면서 살 운명이라는 것. 귀환의 원점 같은 것은 없다는 것. 이제는 그걸 받아들이기로 한다.'고요. 소설가처럼 운명론에 철저하게 반대할 수 있는 이들도 없을 것이지만, 그는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운명을 수긍하기로 합니다. 그러면서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아니, 그래야만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도, 그의 문장도 말입니다.
삶에 정답은 없지만, 운명이라는 하나의 해답이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운명이라는 건 일반적인 통념과는 다르게 수 많은 능동적인 선택을 통해 완성되는 결과론적인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최선의 합리성과 객관성, 그리고 소중한 감정의 균형을 지향하는 삶. 그러한 삶을 선택하는 데는 암묵적으로든, 비암묵적으로든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삶을,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서야 선택될 수 있는 것들이라 생각해 봅니다. 운명(destiny)과 목적지(destination)는 결국 한 곳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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