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편견을 갖고 시작했던 인도 여행 후기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돌아본 나라라고는 인도 하나가 전부이지만, 이번 여행은 인도에 대한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호기심과 경계의 대상이기만 했던 인도인들의 삶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게 되며, '인도인'이기 이전의 인도 '사람'으로서 그들 삶의 결을 엿볼 수 있었다. 이른 새벽, 기차 안을 누비며 사모사와 짜이, 물병들을 분주하게 파는 이들. 역을 나서면 어김없이 달려들어 '마이 프렌드'라고 외치며 목적지를 물으며 달려드는 릭샤 운전수들. 정찰제가 아닌 물건을 살 때면, 세 배, 네 배 이상은 일단 부르고 보는 뻔뻔한 상인들. 그리고, 그들이 아버지, 또는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들.
첫 인도 여행에서는 사기를 당했고, 그렇게 가지고 있던 여행 경비를 모두 잃었다. 그렇게 나는 인도에 무척이나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물론, 이번 여행에서도 사기를 당할 뻔 했고, 인도라는 나라에서는 마음 놓고 여행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2020년 현재 여성이거나, 남성이라 해도 홀로 여행하는 것이 물론 안전해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이번 여행을 바탕으로 좋지 않았던 경험과 좋았던 경험을 나란히 놓아볼 수 있는 보다 이상적인 시도를 해보자면, 인도에서는 좋은 사람들, 좋은 경험들이 훨씬 많았다는 걸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인도에서 태국으로
이틀 전, 인도에서의 마지막 도시였던 마이소르를 떠나 벵갈로르 공항을 거쳐 태국 방콕으로 왔다. 인도에서도 막 확진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시점이었고, 내가 인도를 빠져나온 이후 각 도시는 봉쇄령을 내렸다. 어제부로는 통행 금지 명령을 내렸으며, 이를 어기고 거리로 나온 이들은 체포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도착한 방콕도 상황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2020년 3월 현재, 거의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았으며, 약 5백여 명이 넘는 확진자들이 발생하고 있다. 태국에 오게 된 이상 이곳과 동남아를 여행해 볼까 했지만, 방콕의 거리는 텅 비었으며, 베트남, 캄보디아 등 어디도 국경을 굳게 걸어 잠그지 않은 나라는 없었다.
결국 돌아 간다. 68일 간의 짧다면 짧고도, 길다면 긴 여행을 마치고 말이다. 많이 배웠다. 많이 깨달았다. 나의 부족함 편견에 대하여. 가족과 친구들, 인연의 소중함에 대하여. 다시 나올 날을 기약하며, 길에서 만난 이들의 이름을 기록해둬 본다.
- 델리에 도착하자 만났던 릭샤 운전수 라비 아저씨.
- 2주간 함께 여행 했으며 세 번이나 넘게 다시 만난 인도인 프라카시.
- 자이푸르에서 만나 함께 도시를 둘러봤던 독일인 아론.
- 스트릿 포토를 좋아했던 브라질 여행자 로.
- 국제 연애 중이라 이야기가 잘 통했던 스페인 여행자 세르기오.
- 델리에서 만났고, 한국에서 다시 보기로 했던 인도인 해리.
- 뭄바이 숙소에서 만난 여행가 용님.
- 함피에서 만난 모란님, 희주님.
- 마이소르에서 만난 순박한 숙소 주인장 아저씨와 미국인 Seth.
- 마이소르에서 일하던 아주머니의 아들이었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내 손목 시계를 선물로 주었던 인도 아이. 그리고 그것이 미안했는지, 자꾸만 자신의 어두운 피부에 검은 손목 시계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말했던 아이.
- 그리고, 짧게나마 스쳐갔던 이름 모를 이들, 혹은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나 분명히 존재했던 인연들.
이번 여행을 통해 얻은 문장들
이번 여행에서는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느라 많은 글을 쓰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적어두지 않을 수 없었던 몇 문장들이 노트에 남아 있어 옮겨 적어둬 본다.
'문득, 인도의 모든 릭샤 운전수와 거리의 상인들이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하는 순간이 있다.' - 달리는 새벽 기차 안에서
'낯선 땅에 대한 지독한 편견이 여행을 통해 극복되듯, 삶에 대한 지독한 편견도 마찬가지다.' - 인도를 떠나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모든 것에 이유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가 없어 보인다면, 그 자체가 이유일 수도 있는 것이다.' - 두 달간의 여행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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