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동안 이었지만 초등학생 때 내 꿈은 축구 선수였다. 친구들은 꿈나라에 빠져있을 아침 6시에 일어나 운동장으로 달려가곤 했다. 그곳에서 슛돌이 꿈나무들과 공을 찼다. 폐활량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민첩성은 좋은 편이라 공격수로 주로 뛰곤 했다. 물론 중학교에 들어가며 그 꿈은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축구가 재밌었고,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매일 공을 차곤 했다. 고등학교 때는 축구뿐만 아니라 운동 자체를 거의 하지는 못했는데, 학교에서 운동할 시간 자체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체육 시간은 일주일에 딱 2시간이 주어졌었는데, 그것마저도 고3이 되니 쓸데없는 예체능이라 하여 없어져버렸다.
대학생이 되고 다시 축구를 할 수 있었다. 축구도 하고 풋살도 하며 다시 운동에 흥미를 붙여갈 무렵, 새로운 운동인 수영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집 앞의 바닷가 때문이었다. 일 년 내내 바다를 보며 살면서도 바다에 몸을 담그지 못하는 게 답답했고, 그렇게 처음으로 수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수영은 아침 8시에 시작했다. 집에서 수영장까지는 40분이 넘는 거리였지만,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그만큼 수영이 배우고 싶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일주일에 3번, 2개월을 다녔는데, 결과적으로 자유형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첫 수영 강습은 막을 내렸다.
물이 무서웠다. 중학생 때 친척들과 함께 물놀이를 갔다가 계곡에 빠진 적이 있다. 발이 닿지 않는 곳에서 허우적거리며 물을 먹다가, 이대로 죽는건가 싶을 때 친척 형의 발꿈치를 잡고 겨우 물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그 후로 물에 들어가는 것이 겁이 났고, 물에 뜨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수영장에 다닌 지 한 달이 넘은 다음에야 나는 그러한 공포를 겨우 이겨낼 수 있었고, 두 달차가 되어서야 물에 뜬 채로 앞으로 조금 나아가는 법을 익혔는데, 그마저도 안간힘을 써야 했다. 이후로 몇 년 간 수영과 담을 쌓았다.
그러다 다시 수영장에 다니게 된 계기는, 정말 우연하게, 대학 친구가 시험 준비를 위해 같은 동네로 이사를 오면서였다. 몇 달간의 서울 살이를 같이 하며 우리는 밥도 거의 매일 같이 먹게 되었고, '같이 운동을 하자'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알고 보니 친구는 수영을 좋아했고, 또 잘했다. 그렇게 다시 수영장에 다니게 되었다.
개월 수로 따지면 수영을 배운지 6개월 쯤 된 거 같다. 남들은 이미 초급 라인을 벗어났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제야 겨우 접영을 배우고 있다. '몸에 힘을 빼야 한다'는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사실을 나는 남들보다 아주 늦게서야 체득할 수 있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여전히 힘을 빼는 게 어려웠다. 여전히 물이 무서웠다. 그래도 이제 수영장 레일 한 두 바퀴는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된 데는, 수영은 이제까지 내가 했던 운동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나서부터였다. 축구에서는 더 빨리 달리기 위해 더 많은 힘을 다리에 줘야 했지만, 수영에서는 오히려 다리의 힘을 빼야 했다. 축구에서는 몸싸움을 하며 어깨를 부딪치며 나아가야 했지만, 수영에서는 어깨를 부드럽게 펴고 닫아야 했다. 최대한 저항을 적게 받으며 가볍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물을 이기려 하지 말고, 물을 받아들여야 했다. 강사 분이 그런 말을 했다. 물은 거칠게 다룰수록 거칠게 다가오고, 부드럽게 대할수록 부드럽게 다가온다고. 그렇게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뒤로, 나는 수영의 매력에 풍덩 빠지게 되었다.
그렇게 요즘엔 자세의 중요성과 강약 조절의 중요성, 호흡과 리듬의 중요성을 배우고 있다. 비단 운동의 영역 뿐만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에게는 많이 부족한 요소들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접영 하는 법을 조금 배웠는데, 역시나 어려웠다. 앞으로 수영 초보 딱지를 떼려면 몇 개월, 아니 몇 년은 걸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얼마가 걸리든 나는 계속 수영을 배우려 한다. 여전히 내게 어렵고 생소하며, 그렇기에 동시에 자극을 주고 새로움을 가져다주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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