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들을 마치고 난 다음 공백의 시간이 찾아들때면, 책을 읽고 싶다. 오늘처럼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어오는 늦은 아침이면 독서만큼 좋은 게 없다. 물론 독서만큼 하고 싶은 것도 없다. 두 뺨에 와닿는 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팔락거리는 책장을 바람결이 넘기도록 내버려두며, 풍경과 텍스트를 번갈아 응시하는 시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책을 읽을 때면 몸과 마음의 빈 공간이 말과 문장으로 가득 차오른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나면 얼마 뒤 새로운 문이 하나 열린다. 그러니까 여러 책 중에서도 좋은 책을 읽고 나면, 나의 외연과 내연은 한껏 부풀었다가, 또 다른 세상을 향해 새로운 문을 내곤 한다. 그렇게 책을 읽음으로써 성장해 가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읽어내지 않으면 결코 살아있지 못하는 책 속의 텍스트들은 묵묵히 자신을 발견해 줄 독자를 기다린다는 점에서 애처롭다. 그러나 직조의 직조를 통해 만들어지는 문장과 이를 통해 완성되는 온갖 이야기들은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그것은 지금 내 곁에서 무의미하게 떠도는 것 같은 숱한 기억과 감정과 지식의 파편들이, 실은 삶이라는 시간 속에서 직조되고 있는 텍스트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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