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아자르가 쓴 《자기 앞의 생》은 참 오랜 기간에 걸쳐 읽었다. 석 달쯤 걸렸나? 요즘 책을 많이 보지 못한탓도 있을 것이지만, 글쎄. 그러지 않았으면 싶은, 소설의 결말이 어느 순간부터 짐작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소설에는 모모라는 10살짜리 꼬마가 나온다. 나중에는 자신의 나이가 14살인 걸 알지만 말이다. 그건 모모가 정신이 이상한 친구여서라기 보다는, 자신의 제대로된 나이를 알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모모의 엄마는 매춘을 하는 여자였는데, 아빠로 추정되는 어떤 미친 남자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그렇게 엄마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모모는 ‘그렇고 그런’ 아이들을 떠맡는 로자라는 아줌마 아래에서 자란다. 로자 아줌마는 이제 할머니에 가까운 나이였는데, 그녀도 젊었을 땐 매춘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모모는 말한다.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고. 어린 아이가 하기에는 너무 어른스러운 말이지만, 그가 자라며 겪는 일들을 경험하면 또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모모가 얌전한 아이로 자랄리 없다. 모모는 크고 작은 거짓말과 도둑질을 일삼는다. 그렇다고 지나친 범법 행위까지 저지르진 않지만, 그가 속한 불우한 환경이 그렇지 않고서는 존재감을 드러낼 수 없는 자신에게 자꾸만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모모의 말이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차들 사이를 달리면서 그들을 겁주는 게 재밌었다. 운전자들은 어린아이를 칠까봐 두려워했고, 나는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무엇인가 하게 한다는 것이 기분좋았다. 아무튼 다치지 않게 하려고 끼익 소리를 내며 급정거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죄는 뭘까? 매춘을 하며 살아갔던 로자 아줌마. 그 아래에서 자라며 크고 작은 거짓말과 도둑질을 일삼는 모모. 그들은 분명히 범법 행위를 저질렀지만, 그들을 죄인이라 단정할 수 있을까?
하밀 할아버지는 빅토르 위고도 읽었고 그 나이의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경험이 많았는데, 내게 웃으며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 거지.”
모모는 이제는 나이가 들어 홀로 남은 로자 아줌마 곁을 지키며, 알게 모르게 그녀를 보살핀다. 한 번은 로자 아줌마를 집에 내버려두고, 길에서 만난 어느 아줌마를 따라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신나게 논다. 그리고는 이내 로자 아줌마 없이 혼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을 후회하며, 집으로 달려온다. 로자 아줌마가 자신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무서워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그리고 그건 모모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아침, 나는 로자 아줌마가 눈을 뜨는 것을 보면 행복했다. 나는 밤이 무서웠고, 아줌마 없이 혼자 살아갈 생각을 하면 너무나 겁이 났다.
로자 아줌마는 결국 나이가 들어 병에 걸려 죽는다. 모모는 그런 로자 아줌마의 곁을 끝까지 지킨다. ‘병명이 뭐냐, 얼마나 더 살 수 있냐’ 하는 아줌마의 물음에 크고 작은 거짓말로 대답하며 말이다. 앞에서 모모의 나이가 10살인 줄 알았는데, 실은 14살이었던 이유가 있다. 다음은 아줌마가 죽기 전 모모와 나눈 짧은 대화다.
“로자 아줌마, 왜 내게 거짓말을 했어요?” 그녀는 정말 놀라는 것 같았다. “내가? 내가 너한테 거짓말을 했다구?” “열네 살인데, 왜 열 살이라고 하셨냐구요.”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로 그녀는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네가 내 곁을 떠날까봐 겁이 났단다, 모모야. 그래서 네 나이를 좀 줄였어. 너는 언제나 내 귀여운 아이였단다. 다른 애는 그렇게 사랑해본 적이 없었어. 그런데 네 나이를 세어보니 겁이 났어. 네가 너무 빨리 큰 애가 되는 게 싫었던 거야. 미안하구나.”
이 책은 결국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결국,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랑한다는 건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 같다. 서로가 서로를 오래 참고, 미워하다가도 용서하고, 또 다시 애정하는 것. 그렇게 감정의 기복과 생의 크고 작은 파도들을 함께 지나는 것.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다. 그리고 로자 아줌마도 모모를 사랑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목에 팔을 두르고 그녀의 볼에 뽀뽀해주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냉정하다고들 했지만, 세상에 그녀를 돌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혼자 육십오 년 동안 온갖 풍상을 견디어왔으니 때로는 그녀를 용서해줘야 한다.
그들의 외관은 누가 보아도 분명한 사회의 주변부에 속한 이들 같았을 것이다. 그치만 그들은 무척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던 거 같다. 모모의 말처럼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소개해 본다.
‘먼저 말해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의 칠층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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