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기대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어요. 처음에는 그저 지속되는 시간에서만 차이가 있는 줄 알았죠. 희망이 좀더 멀리 있는 일을 기다리는 거라고 말이에요.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요. 기대는 몸이 하는 거고 희망은 영혼이 하는 거였어요. 그게 차이점이랍니다. 그 둘은 서로 교류하고, 서로를 자극하고 달래주지만 각자 꾸는 꿈은 달라요. 내가 알게 된 건 그뿐이 아니에요. 몸이 하는 기대도 그 어떤 희망만큼 오래 지속될 수 있어요. 당신을 기다리는 나의 기대처럼요.
(...)
나는 당신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어요! 그리고 나는 당신의 친구는 아니죠. 나는 당신의 여인이에요. 당신에게 말해 주고 싶은 것이 있어요. 덧없는 것은 영원한 것의 반대말이 아니에요. 영원한 것의 반대말은 잊히는 것이죠. 잊히는 것과 영원한 것이, 결국에 가서는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들은 틀렸어요. 영원한 것이 우리를 필요로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들이 옳아요. 영원한 것은, 독방에 갇힌 당신과, 여기서 이렇게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당신에게 피스타치오와 초콜릿을 보내는 나를 필요로 하죠.
(...)
당신의 편지를 쥐고 있으면, 제일 먼저 느껴지는 건 당신의 따듯함이에요. 당신이 노래할 때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것과 똑같은 따듯함. 그 따듯함에 내 몸을 꼭 대고 눌러 보고 싶지만 참아요. 왜냐하면, 기다리면, 그 따듯함이 사방에서 내 몸을 감쌀 테니까요. 당신의 편지를 다시 읽고 당신의 따듯함이 내 몸을 감싸면, 어느새 당신이 쓴 말들은 먼 과거가 되고 우리는 함께 그 말들을 돌아보죠. 우리는 미래에 있어요. 알 수 없는 미래가 아니에요. 우리는 이미 시작된 어떤 미래 안에 있어요.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딴 미래 안에 있는 거예요. 내 손을 잡아요. 나는 당신 손목에 있는 상처에 입을 맞춰요.
- 존 버거 ‹A가 X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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