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다 보면 '이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도시들이 있었다. 그러한 도시들에는 한결같이 사람과 건축물이 어우러진 공간이 있었다. 도시의 특성상 자연과도 완벽히 어우러진 도시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역할을 하는 공원과 강,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침마다 햇볕이 내리쬐는 곳이 있었다. 그럴 때면, 그곳에 사는 이들이 참 축복 받았다 생각하며 그저, 부러워 하곤 했었다.
건축물과 공간, 그리고 아파트
하나의 건축물은 벽을 쌓고 구분을 통해 단절된 공간을 만들어 낸다. 한국의 건축물=아파트를 볼까. 한국형 아파트는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많은 이익을 창출해 내려는 건축물이며, 프라이빗한 공간을 창출한다. 이러한 프라이빗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문제는 이것이 '프라이빗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건축물은 연결을 봉쇄한다. 그렇게 고립시킨다. 단순히 잠을 자는 것 이상의 공간으로써, 그 속의 사람과 삶을 우선시하는 구조는 아닌 것이다.
왜 어떤 거리는 걷고 싶을까?
건축, 하면 당연히 서양의 건축물들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이 책은 한국의 건축에 대한 이야기들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강남의 테헤란로 보다 홍대 거리가 더 걷고 싶은 거리인지, 연인과 함께라면 덕수궁 돌담길이 더 걷고 싶은 거리인지 하는 것에 대한 분석. 또, 광화문 거리는 왜 매번 시위와 집회가 일어나는 공간이 됐는지에 대한 분석. 여러 분석들의 공통점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결국, 공간과 사람 간의 유기적 작용과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좋은 건축, 좋은 공간에 대한 고찰
요즘, 자연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책을 읽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연에 들어가고 싶은 것이라기 보다는 아침마다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었던 거 같다. 여러 불편을 감수하고서 자연 속에서 살기를 갈망할만큼 내가 머무르는 서울의 자취방, 그리고 그 자취방 근처의 거리들은 여전히 매력적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책을 읽으며 머릿말부터 메모한 책은 아마 이 책이 처음인 거 같다. 다소 길지만 저자의 인문학적 내공과 건축에 대한 태도가 드러나는 문장이라 인용해 본다.
"괴테는 건축은 얼려진 음악이라는 말을 했다. 그의 말대로 건축에는 음악처럼 리듬, 멜로디, 화음, 가사가 있다. 고딕 성당 안을 걷다 보면 도열해 있는 열주들이 음악의 박자처럼 느껴지고, 스테인드글라스 그림의 이야기는 노래의 가사처럼 우리에게 말을 한다. 이러한 리듬과 화음 같은 음악적 요소들은 조각품이나 그림에서도 느낄 수가 있다.
하지만 건축물만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전달 매채가 있다. 그것은 비어 있는 보이드 공간이다. 공간은 우주가 빅뱅으로 시작되었을 때부터 시간과 함께 있었던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공간이 없다면 빛도 존재할 수 없다. 공간이 없다면 우리는 시간을 느끼지도 못할 것이다.
건축은 이러한 공간을 조절해서 사람과 이야기한다. 이러한 보이드 공간은 건축의 도움을 통해서 느끼게 된다. 우리 눈으로 캄캄한 우주 공간을 쳐다보면 그 광활한 공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일상의 공간도 마찬가지다. 건축물이 만들어지기 전의 공간은 막연하다. 하지만 벽을 세우게 되면 막연해서 느껴지지 던 공간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처마자 만들어지면 비로소 처마 밑의 공간이 우리에게 편안한 안식을 준다. 우리는 돌, 나무, 흙 같은 자연 속의 재료를 가지고 건축물을 만든다. 그리고 그 건축물이 부산물로 만들어 내는 빈 공간 안에서 생활한다.
그 공간에서 생활하기 시작하면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그 공간은 또 다시 우리를 만든다. 이처럼 건축물을 만든 사람은 시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그 공간을 통해서 다른 시대의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다. 건축물은 소통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건축물과 사람은 떼어 낼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건축물은 삶의 일부가 된다." _ 유현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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