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서점에 들러 김애란의 책을 두 권 샀다. <비행운>과 <바깥은 여름>을 샀는데, 책을 펼쳐보기 전까지는 단편 모음집이 아니라 장편 소설인 줄만 알았다. 사실 <바깥은 여름>은 정말이지 첫 부분에 실린 단편 <입동>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장편 소설인 줄 알았다. 그래서 문장들을 꼼꼼하게 읽지 않고 슥슥 넘겨가며 읽었는데, 별안간 소설이 끝나버려 다시 되돌아 가 문장들을 읽기도 했다.
<입동>을 읽고서 <풍경의 쓸모>를 읽었다. 단편의 장점이라면 한 번 앉거나 누운 자리에서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전에 김금희 <체스의 모든 것>을 읽고서 한 소설가가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쓰나'라고 평했었는데, 김애란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동일한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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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도시가 아니면서 도시가 아닌 것도 아닌' 공간을 한참 가로질렀다. 미분양 아파트와 아웃렛, 비닐하우스와 공장, 공원묘지와 화원, 진흙오리구이며 장어구이 따위를 파는 보양식당과 프로방스풍 모텔을 비껴갔다. 수도와 지방의 이음매는 무성의하게 시침질해놓은 옷감처럼 거칠었다. 어둠 너머론 논과 밭이 지루하게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서울 톨게이트쯤 오면 꼬리를 길게 늘인 자동차 행렬이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수많은 불빛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중심을 향해 빨려들어갔다. p.159
여행을 떠나는 소설을 좋아한다. 사진과 빛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소설을 좋아한다. 요즘 나는 여행을 떠나고 싶은데 과연, 그래도 되나 싶어 우물쭈물 거리고 있고, 사진을 담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막한 상황이다. 사실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인지한 건 오래됐는데, 이 상황에 안일한 기대와 함께 익숙해져 버렸다. 매대에서 책을 빠르게 넘겨보다 김애란의 책을 두 권이나 샀던 이유는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풍경의 쓸모>는 아버지와 떨어져 사는 가족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소설 속 주인공은 어머니와 함께 떠난 태국 여행에서 무더운 여름철 태국의 계절과 추운 한국의 겨울 그리고 시차를 통해 아버지의 '안'과 '밖'을 새롭게 발견한다. 풍경이란 '바깥'인데, 이를 통해 '안'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풍경의 쓸모'란 내면을 발견하는 일, 정도로 정리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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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속 부고를 떠올리며 문득 유리 볼 속 겨울을 생각했다. 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 마음 속으로 '나는 공짜를 바란 적이 없다'고 중얼거렸다. 왕왕거리는 비행기 소음 사이로 누군가 내게 "더블폴트"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p.182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김애란의 소설을 읽으면 그의 다른 소설 <서른>에 적힌 문장을 나도 모르게 되뇌곤 한다. 글쎄. '네 잘못만은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다. '그럴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구조 때문이야.'라고 모두가 마음 편해지는 위로를 전하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그의 소설 주인공들은 그런 말과 위로가 모두 무색하리만큼 그저 곁에서 침묵을 지킬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 있을 때가 많다. 현실적이어도 너무나 현실적인 그의 소설 안에서, 나의 바깥, 내가 몸담고 살아가는 세계의 먹먹한 단면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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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마치고 돌아올 때 종종 버스 창문에 얼비친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 어떤 사건 후 뭔가 간명하게 정리할 수 없는 감정을 불만족스럽게 요약하고 나면 특히 그랬다. '그 일' 이후 나는 내 인상이 미묘하게 바뀐 걸 알았다. 그럴 땐 정말 내가 내 과거를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화는, 배치는 지금도 진행중이었다.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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