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윌리엄스 <스토너>를 읽고: 평범한 삶의 울림
대학에서 영문학 교수로 살아가다 죽음을 맞닥뜨린 스토너는 자신에게 거듭 되묻는다.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문학 수업을 들으며, 평생을 교육자로 살아간 스토너.
젊었을 때, 스토너는 이디스라는 아름다운 눈동자를 가진 이와 결혼을 하고, 그레이스라는 딸을 낳기도 한다. 그러나 연구와 교육에 몰두할 수 있는 스토너와 다르게 별다른 일이 없는 이디스의 서로 다른 일상의 깊이는 서로를 향한 열정을 이내 사그라들 했고, 부부 사이의 어색한 침묵을 속에서 딸 그레이스 또한 말 없는 어른으로 커 나간다. 스토너는 세미나를 통해 캐서린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용납될 수 없는 연애는 머잖아 막을 내린다.
스토너는 생각이 깊고, 배려심이 강했다. 농부의 자식이었지만, 두 팔을 걷고 상황에 적극 뛰어들기 보다는, 땅이 농작물을 키워내듯 묵묵이 상황을 관조하곤 했다. 그런 스토너는 어쩌면 자신이 기대했던 대로 인생을 살았다.
이디스와 첫 눈에 사랑에 빠졌지만, 결혼 초기 이디스의 불안감을 끌어안아 주기보다는 결국 서로 시간을 갖는 편을 택했다. 이디스가 딸 그레이스에게 집착하기 시작할 때도, 자신과 행복하게 시간을 보내던 딸이 점차 미소를 잃어가는 것을 목격하면서도, 이디스 또한 그레이스를 사랑한다는 고백 앞에서 한 걸음 물러서는 편을 택했다. 캐서린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그녀가 불편해 할 거라는 생각에 자주 그녀를 찾아가지 않다가, 캐서린이 자신을 붙잡을 때에야 속 마음을 털어 놓았다. 세계가 전쟁 통 속에서 고통과 절규에 휩싸일 때, 그렇게 친구들이 입대를 할 때, 스토너는 대학에 남아 조용히 책을 보고 연구를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편을 택했다.
그러니 어쩌면, 스토너는 별다른 기대를 갖지 않고 살아갔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많은 것들을 내버려 두었고, 그러므로 그것이 스토너가 기대했던 삶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토너가 걸어 간 발자취를 곰곰이 되짚어 볼 때면, 이는 거창한 꿈과 별다른 기대 없이 그저 소소한 행복 속에서 살아가고 싶은 현대인들의 바람과 그리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스토너의 삶은 불필요한 수식어구들을 모두 빼낸 삶이었다. 무엇보다도 스토너는 진솔했고, 그 결과 찾아오는 쓸쓸함과 고독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였다. 마치, 어느 작품의 장을 지나는 것처럼 말이다.
스토너가 실존했다 하더라도 이제는 그를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고, 또 기억하더라도 별다른 이야기를 이어갈 이도 많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무엇보다 검고, 그 무엇보다 차가운 글자' 로 되살아 나는 소설 속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삶과 그의 연구실에 비쳐오던 햇살이 종종 발견될 것이고 때로는 평범한 삶에 어떤 울림을 주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까 대체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나? - 존 윌리엄스 <스토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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