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이다. 아직, 올해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연말에는 이사와 새로운 공부로 더 정신이 없을터이니 나름의 기록을 해두고자 한다.
정체성
올 한 해, 오롯이 프리랜서라는 정체성을 갖고 살았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게 좋지만은 않았다. 자유의 반대편에는 불안이 맞닿아 있었고, 괜스레 센티멘털해지는 새벽에는 현타가 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난 프리랜서였고, 그 사실을 제대로 인정하고 나서야 나아갈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계약직 노동자와 프리랜서의 차이점을 몇 년 만에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이 프리랜서라는 정체성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출발점이 되었던 거 같다.
도전의 결과
벌인 일도 참 많았다. 새롭게 시도했던 사업, 공부, 인간관계, 투자 등등. 실패했던 것도 있고, 소정의 성과를 얻었던 것도 있으며, 생각보다 크게 성공한 것들도 있었다. 삶의 많은 것들이 트레이드오프라는 것을 배웠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 법이고,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는 법이라는 걸 몸소 겪었다.
이제 그런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 그 무엇을 잃지도, 얻지도 않는 정체됨이다. 실패의 실제적인 모습은 확률적으로 99.9%가 삶을 초토화시키는 쓰나미가 아니라, 멀리서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들이리라. 그런 파도 앞에서 거칠게 뺨을 맞다보면(?) 언젠가는 서퍼처럼 파도를 탈 수 있는 법을 배우리라 믿는다.
현실과 꿈
20대 시절 나를 위로해주었던 건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구조론적 시각의 힐링 메시지들이었다. 그것들은 물론 소중했고,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게 도와주었지만 결국에는 더욱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보다 현실적인 인식이 필요함을 느꼈던 계기는 밥벌이를 위한 노동을 통해서였다. 결국 대부분이 하나의 타협점 위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게 현실임을 목격했다. 꿈을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 정말로 꿈을 이루고 싶다면 이를 보다 현실적인 맥락으로 끌어와야 했다.
자본주의와 돈
자본주의 시대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 그걸 탐욕적이라 표현하는 건 어딘가 아쉽다. 돈이면 다 된다는 것이 아니라, 돈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다. 무엇보다도 돈은 탐욕을 통해 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불로소득과 불법적인 일들을 제외한다면) 사회와 구성원에게 유용하다 여겨지는 가치를 제공했을 때 얻어지는 가치 교환의 산물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여러 스타트업 비즈니스맨들의 시도를 존경한다. 자본주의 시대에서는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면, 돈은 따라오게 되어 있다. 물론, 그 과정이 만만하지는 않다.
정반합
내가 이렇게 살아가(게 되)는 건 주체적인 선택의 결과물일까, 또는 운명이었을까. 무엇도 정답이 아니라 본다. 살아가며 또, 살아가게 되는 게 삶일 것이니. 삶의 지난 시간들이 정반합으로 맞물려 지금의 나로 귀결되었다고 본다.
말과 행동
내년 한 해는 주어진 일을 해내는 프리랜서가 아니라 정말로 내 일을 하고 싶다. 걱정했던 것 보다 잘 할 수 있을 거 같은 근거없는 자신감이 마음 한 구석에 피어 올라 있다.
나이가 들며 말보다 행동으로 시간을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서야 나는 비로소 나의 생각대로 살아갈 용기와 믿음을 갖게 되었다. 몇 년 만에 갖게 된 그러한 마음가짐이 참 소중하여 잃고 싶지 않다. 내년엔은 최선의 삶을 말이 아닌 행동의 결과물로 보다 선명하게 증명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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