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간다. 눈길을 끄는 사진 앞에 선다. 그것을 5분 동안 바라본다. 사진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 - 연습1. 바라보기, p.15
사진을 오래 바라보는 일은 꽤나 드문 경험이 됐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진은 인터넷 상에서 소비되는데, 유통의 대표주자격인 소셜 미디어는, 점점 더 빠르게 사진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뭐, 이미지의 빠른 소비가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사진들을 보며 영감을 얻을 수도 있고, 많은 사진 중에서 이목을 끄는 사진들을 쉽게 가려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사진을 단순히 소비하는 것이 아닌 감상하려 할 때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사진은 찰나의 예술이고, 우리는 그것을 찰나에 인식하기도 하지만 때로 사진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들여다봐야 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한 편의 시처럼 말이다.
어떻게 찍을 것인가
저자는 3분할 법칙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적정 노출을 이야기하지 않고, '주제' 이야기도 처음부터 하지 않는다. 저자는 먼저, '바라보고 느낄 것'을 요청한다. 사진 속 기호와 상징, 메시지와 의도는 나중에 생각해도 된다고 말하며 말이다.
보여지는 것, 그 자체. 너무 성급하게 메타포나 상징으로 건너뛰지 마라. '문화적 의미'를 담으려 하지 마라. 아직 이르다. 이런 것들은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먼저 대상의 표면에 떨어진 빛의 실체를 느껴야 한다. - 사진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 p.19
사실, 이견이 많은 주장이기도 하다. 느낌으로 사진을 찍는 것만큼 안 좋은 습관이 없다고 비판하는 사진가들도 있다. 그들은 주제를 먼저 생각하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심하라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필립 퍼키스의 <사진 강의 노트>는 어딘가 문학 수업을 듣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볼 것인가
사진은 단순히 피사체의 외양을 재현하지 않는다. 사진가는 외양을 특정한 순간에, 특정한 프레임으로 분리해 제시하며, 그렇게 만들어진 사진은 단순한 재현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대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필립 퍼키스는 몇 가지 흥미로운 방법들을 제시한다.
한 영역을 한꺼번에 전부 볼 수 있도록 눈의 근육을 풀고 뒤로 물러나 앉는다. 여기저기로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 매우 엄격한 노력을 요구하지만 사진 찍는 연습으로 이보다 더 좋은 훈련은 없다. - 연습 3. 보는 방법, p. 39
어둑해질 무렵, 여전히 볕이 드는 방안에서 빛이 들어오는 쪽을 향해 편안한 의자를 놓고 앉는다. 완전히 해가 질때까지 그곳에 머문다. 그저 빛을 지켜본다. - 연습6. 빛을 지켜보기, p.75
사진, 빛으로 그린 그림
필립 퍼키스 <사진 강의 노트>는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뜻, 포토그래피의 어원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는 카메라나 그것과 관련한 테크닉 보다는 빛, 그림자, 마음, 태도, 영감에 대해 이야기 한다. 빛을 보고, 느낄 것. 마음을 따라 셔터를 누르고, 다시 천천히 들여다 볼 것. 무엇을, 왜, 찍는지 숙고할 것.
과거의 어느때보다 사진 찍는 일이 쉬워지고, 또, 숨가쁘게 소비되는 와중에 그는 멈춰서 바라보고 느끼기를 요청한다. 그렇게 그는, 순간을 포착해내야 한다는 의무감을 조금 내려 놓고, 아름다움에 대한 정형화된 기준을 제쳐두고, 우선은 그 순간에 빠져들 것을 요청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 하나를 소개하며 마치려 한다.
필름 한 통을 빛에 노출시키고 인화를 한다. 하얗게 인화된 사진을 보면 누군가 물을 것이다. "도대체 뭘 찍은 거야?" 그때 이렇게 대답한다. "빛" - 연습7. 빛을 찍어보기,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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