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마다 고유한 질병이 있다. <피로사회>의 첫 문장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질병은 무엇일까. 지난 세기는 면역학의 시대였다. 사람들은 병균에 저항하듯 지배자의 명령과 규율로부터 자신을 지켰다. 그렇게 자유와 의미를 추구했다. 그러나 현대는 신경성 질환을 앓는 시대다. 이 시스템에는 지배자가 없다. 해내지 못하면, 스스로 좌절감을 느낄 뿐이다.
<Yes we can> 이라는 복수형 긍정 문장은 이런 사회를 정확하게 드러낸다. 이제 금지, 명령, 법률의 자리에 프로젝트, 이니셔티브, 모티베이션이 들어섰다. 규율 사회의 부정성이 광인과 범죄자를 만들어 냈다면, 성과 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 낸다.
21세기 사회는 규율 사회에 성과 사회가 되었다. 개인은 더이상 복종의 주체가 아니라, 성과 주체다. 이제 우리는 우리 삶을 경영하는 기업가다. '새로운 폭력은 시스템 자체에 내재'하고, 따라서 면역 저항을 유발하지 않는다. 이 시스템 속에서, 인간은 지배자 없이 스스로를 착취한다.
병원, 정신병자 수용소, 감옥, 병영, 공장으로 이뤄진 푸코의 규율 사회의 자리에 완전히 새로운 사회가 들어섰다. 새로운 사회는 피트니스 클럽, 오피스 빌딩, 은행, 공항, 쇼핑몰, 유전자 실험실로 이뤄져있다.
무언가에 즉각 반응하는 것, 모든 충동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일종의 병이며, 몰락이자 탈진이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니체의 사색적 삶을 이야기 한다. 이는 모든 일을 그저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아니오'라고 말하는 삶이다. 이러한 사색적 삶과 더불어 분노가 필요하다, 저자는 말한다. 분노는 현 상황에 대한 총체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상황을 중단시키고, 새로운 상황이 시작될 수 있게 하는 능력'인 분노는, 그런 점에서 짜증과 다르다.
저자에 따르면 힘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긍정적인 힘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 또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힘으로 무언가를 하지 않을 힘이다.' 부정적 힘은 단순한 무력함, 무언가를 할 능력의 부재와는 다르다. 무력함은 단순히 긍정적인 힘의 대립항일 뿐, 무언가를 해내지 못하는 것으로, 결국 무언가에 대한 종속이며 그 점에서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부정적 힘은 무언가에 종속되어 있는 이러한 긍정성을 넘어선다. 이는,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다.
그러므로, 그렇다면, 그러니까, 무엇을 사색하고, 무엇에 분노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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