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도련님>에 나오는 '나'는 어느 부잣집에서 자란 것 같은 인물로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대책없이 살아가는 '나'는 막무가내인 성격이어서, 뭐든 내키는대로 마음을 따라서 행동한다. 그는 어딘가 사회에 부적응하는 자 같지만, 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사회가 나와 다를 뿐이다. 가령, 그는 자신을 돌봐주던 할머니 기요에게 편지를 쓰는데, 이런식이다.
'어제 도착했다. 별볼일 없는 동네다. 다다미 열다섯 장이 깔린 방에 누워 있다. 여관집 종업원에게 덧돈으로 5엔을 주었다. 오늘 주인 마누라가 책상에 이마가 닿도록 절을 했다. 어제는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기요가 에치고의 갈엿을 껍질까지 먹는 꿈을 꾸었다. 내년 여름에는 돌아갈 것이다. 오늘 학교에 가서 선생들에게 별명을 붙여주었다. 교장은 너구리, 교감은 빨간 셔츠, 영어는 끝물 호박, 수학은 거센 바람, 미술은 떠버리. 이제부터 일이 있으면 편지를 쓸 것이다. 그럼 이만.'
'나'는 선생임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걸 그냥 모른다고 말한다. 또 한번은 봉급이 오른다는 사실에 좋아했다가도, 직장 동료가 해고 당하는 대신 자기 봉급이 오른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한밤중에 교감을 찾아가 봉급 인상을 거부하겠다고 말한다. 면전에서 마음에 드는 말은 다 하고 마는 그는 참 대책 없는 사람이다. 속내를 감출 필요도 없는 그는, 이용당하기에도 안성맞춤인 사람이다.
<도련님>은 말에 관한 소설이란 생각이 들었다. 말로 구성되는 매일의 모습은 겉과 속을 구분하기 어려울만큼 복잡하게 엮여 있기 마련이지만,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겉과 속이 다른 말을 하곤 한다. 때로는 예의를 갖추는 일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속내를 감추기 위해서다. '내'가 내뱉는 유희적-반사회적 말들은 그러한 이중성을 향한 얕은 경멸과 애정 표현은 아니었을까?
나쓰메 소세키 그리고 <도련님>
한 때 천엔 짜리 지폐를 장식했던 나쓰메 소세키. 소세키라는 어감이 흥미로워 조금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었다. 작가가 소세키를 필명으로 사용한 이유는 <도련님>의 주인공 '나'가 던지는 해학적 메시지와 전혀 무관하지는 않은 거 같다.
소세키는 (漱石:수석) 돌로 입을 헹군다는 의미다. 소세키란 말이 생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안빈낙도의 생활을 뜻하는 말로 돌을 베고 시냇물로 입을 헹군다는 표현이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를 잘못 사용해서 시냇물을 베고 돌로 입을 헹군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그것을 비웃자, '시냇물을 베개로 삼는다는 것은 더러운 말을 귀에서 씻는다는 의미이고 돌로 입을 헹군다는 것은 속세의 일을 버린다는 비유'라고 우겼다고 한다. 소세키는 '말장난을 하거나 무리하게 억지를 쓰는 것을 일컫는 말'이라 한다.
'책 > 책 읽고 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병철 <시간의 향기>를 읽고 ∙ 향기는 이야기에 깃든다 (0) | 2019.07.27 |
---|---|
한병철 <피로 사회> : 너무 긍정적이어서 우울한 현대인을 위한 책 (0) | 2019.07.26 |
신영복 <담론> : 존재에서 관계로 (0) | 2019.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