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뉴델리 입성 ⏐ 인도 여행 ⏐ 세계 여행 D+1
새벽 네 시 반. 부모님과 리무진 버스 타는 곳에서 포옹을 나눴다. 아버지는 그대로 일을 하러 가시고, 어머니는 새벽 기도를 가셨다. 나는 버스를 타고 인천 공항으로 갔다. 세 시간 반 뒤. 눈을 떠보니 인천 공항 1터미널이었다.
비행기 시간은 11시 25분이었는데 도착하니 8시가 조금 넘은 상황. 30분 간 탑승 수속 대기. 이어 차례가 와서 티켓과 비자를 건넸다. 문제는 비자 승인서가 아닌 비자 신청서를 뽑아왔다는 것. 허허. 다행히도 근처에 프린트를 할 수 있는 곳이 있어 다시 수속을 밟고 게이트로 들어섰다.
이후 공항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만끽하려 했건만, 사람이 워낙 많아 짐 검사까지 마치고 나오니 바로 탑승 시간이었다. 면세점에서 카메라 가방도 사려했는데 정말이지 그럴 시간은 단 5분도 주어지지 않았다.
인도에 가기 위해 이용한 항공사는 에어 인디아였는데, 좌석도 꽤나 넓었고, 무엇보다도 양 옆으로 아무도 타지 않아 나름 편안하게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장장 8시간의 비행 동안 카레와 사모사, 땅콩을 한 번 씩 먹고, 밀린 번역을 하나 마치고, 화장실을 두 번 다녀오고, 나머지 시간에는 계속 잠을 잤다.
뉴델리 공항에 도착해서 비자 확인을 받고 짐을 찾아 밖으로 나왔다. 9년 전 인도를 처음 찾았을 때만큼 긴장이 됐지만, 거리의 풍경은 그때보다 한층 여유로워진 듯 했다. 약간의 돈을 환전하고, 호스텔이 있는 빠하르간지 근처 뉴델리 역으로 가는 공항 메트로를 탔다. 가격은 60루피(약 1천 원).
그런데 웬 걸. 혼란스러기 그지 없을 것 같았던 뉴델리는 생각보다 차분하기 그지 없었다. 물론 뉴델리 역을 나오자 달려드는 릭샤 운전수가 몇 있었고, 쉴새없이 울리는 경적 소리가 들리며, '아, 이제부터 인도구나.' 싶었지만 말이다. 뉴델리 역을 나오는데 어느 릭샤 운전수가 계속 말을 걸었다.
“헬로. 마이 프렌드. 어디가?”
“나 걸어 갈 거야.”
“빠하르간지? 인도 처음이야?”
“네 번째 방문이야.” (두 번째였건만 서로를 위해 네 번째라 거짓말을 했다.)
“아, 그래? 조심해. 저녁에 걸어가면 사람들이 카메라랑 훔쳐갈 거야.”
해가 진 다음 여행지를 걸어다니지 않는 것이 하나의 여행 원칙이지만, 저녁 7시가 막 넘은 시간인데다가 큰 도로를 따라 20여 분을 걸어가면 되는 상황이었기에 그냥 걷기로 했다.
호스텔로 들어서며 길 폭은 점차 좁아졌고 여기저기서 릭샤, 오토바이, 자동차의 경적 소리가 울려댔다. 그 사이를 수 많은 인파와 부대끼며 함께 지났다. 비가 왔는지 도로 곳곳에 웅덩이가 고여 있었고, 포장도 제대로 되지 않은 질척 거리는 땅을 디디며 숙소로 걸었다. 트레킹화를 신고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땀 범벅. 짐을 풀고 가족들에게 잘 도착했다는 톡을 남겼다. 밖으로 나가 근처의 어느 식당에서 스페셜(?) 탈리를 시켜 먹었다. 달, 치즈 커리, 그냥 커리, 요플레, 밥, 로티가 나왔는데, 나름 맛은 괜찮았다만(구성은 기내식에서 먹은 것과 똑같았다), 바람 불면 훅하고 날라갈 거 같은 밥은 도저히 반 이상은 먹을 수가 없었다.
호스텔에 다시 돌아왔다. 나가기 전까지만해도 사람이 없었던 터라 오늘은 혼자 자는구나 싶었는데, 하나 둘 여행자들이 몰려왔다. 남인도를 여행하고 뉴델리로 올라왔다는 중국에서 온 여행자 한 명, 아그라를 보고 돌아왔다는 알바니아에서 온 여행자 한 명(그는 양해를 구하고 숙소에서 무슬림식 기도를 드렸다),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왔다고 이야기 한 여행자 한 명, 또 구두를 신고 다니는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여행자 한 명. 우리는 짧은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시간을 가졌다.
지난 번 여행에서는 뉴델리에 도착하자마자 사기를 당했다. 그 때문인지 오기 전부터 이런 저런 상상을 많이 했는데, 그래서인지 델리의 첫 인상은 생각보다 평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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