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전자기기다. 길을 찾고, 맛집을 검색하고, 각종 티켓을 저장하고, 항공과 숙박 체크인까지 모두 감당하는 스마트폰은 당연 필수품이며, 사진이나 영상 작업을 하려면 카메라와 노트북이 있어야 한다. 그뿐일까. 여행지에서도 전자기기를 계속적으로 사용하려면 저마다 다른 충전기, 배터리, 메모리 카드, 케이스 등 보조 기기들도 반드시 챙겨야 한다.
이번 여행에 내가 가져가는 전자기기들은 후지 X100F카메라, 고프로, 맥북, 페이퍼프로, 스마트폰이다. 여기에 카메라용 SD 카드, 여분 배터리, 충전기, 고프로 용 SD 카드, 여분 배터리, 충전기, 삼각대, 맥북용 충전기, 페이퍼프로 용 충전기, 스마트폰 충전기 및 각종 충전기를 한 데 모아 줄 멀티 어댑터들을 함께 가져 간다. 여행에 가져가는 짐 무게와 부피의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
무겁고 자리를 차지만 어쩔 수 없다. 일상에서 전자기기가 필수인 것처럼, 여행지에서도 전자기기는 필수니 말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여행지에서는 일상에서보다 전자기기에 대한 의존도와 그 필요성이 더 높아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여행지에 가져가는 전자기기가 여행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바르셀로나를 여행할 때였다. 아침 일찍 공원을 산책한 다음, 부푼 기대 속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찾았다. 가우디 특유의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잔뜩 흥분한 상태였는데, 셔터를 누른 순간 '메모리 카드 없음'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간밤 사진 편집을 하던 노트북에 그대로 꽂아놓고 나온 것이다. 그렇게 그 날 가우디 성당에서 사진을 한 장도 찍지 못했고, 덕분에 그 어느 관광지보다 자세하고, 주의 깊게 성당 곳곳을 두 눈에 담고자 했다. 사진 찍는 걸 무척 좋아하지만, 카메라를 내려놓고 나니 사진을 찍을만한 곳이 아닌 곳에서도 머물러 서게 되었고, 아무 생각 없이 의자에 앉아 흘러나오는 주기도문을 듣기도 했다. 그래서 더 좋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래서 조금 다른 여행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전자기기라는 도구는 여행의 많은 부분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새로움'을 위해 일부 전자기기를 포기한다고 상상해보자. 그래도 차마, 스마트폰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고, 만약 카메라를 안 가져간다면 눈으로 더 자세히 보려고 노력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이를 기억하기 위해 글을 더 많이, 열심히 쓰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노트북을 가져가지 않는다면 현지 리플릿을 활용해 여행을 계획하게 될 수 있고, 저녁이면 숙소로 돌아와 웹서핑을 하는 대신 로비에 앉아 현지 텔레비전을 보다 또 다른 여행자와 이야기를 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자책 단말기가 없다면 현지의 어느 허름한 서점에 들어가 중고 책을 구매해 읽어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중에서 무엇이 더 낫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여행을 떠나는 목적에 맞춰 가져 가는 전자기기들을 신중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번 여행에는 일상에서 사용하던 전자기기들을 거의 고스란히, 보다 정확하게는 몇 가지를 더 추가해 가져간다. 최대한 많은 것을 글로 적고, 사진으로 담고, 영상으로 기록하는 것이 여행의 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도 언젠가는 기록의 도구 없이 떠나가는 여행을 하게 될 날이 올까. 어쩌면 여행의 순간들 중에는 기록되지 않을 때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무엇으로도 기록되지 않은, 기록될 수 없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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