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북부 치앙마이에서 3시간 정도 떨어진 빠이라는 작은 마을을 여행하고 왔다. 빠이에서는 스쿠터를 빌려 마을 곳곳을 돌아 다녔는데, 해질 무렵 빠이 캐니언이라 알려진 곳에 오르게 되었다.
좁디 좁은 길의 끄트머리에 앉거나 서서 사진을 찍는 이들을 지나 조금 더 먼 곳으로 혼자 나아가게 되었을 때, 오랫동안 잃어버리고 있던 단어들이 하나 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적요함, 아름다움, 사랑과 같은.
공기의 이동마저 멈춰버린 듯한 뜨거운 어느 길목을 지나, 양 옆으로 펼쳐진 위태로운 절벽의 풍경과 구름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순간이 전체가 되는, 일종의 충만함은 여행지가 유독 아름답거나 특별해서라기 보다는 스스로가 그만큼 무미건조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그곳에 한참을 앉아 있은 다음에야 나는 우울과 무기력에 여행이 끼치는 영향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여행은 우울과 무기력을 어찌하지 못했다. 다만, 여행은 우울과 무기력을 마주할 수 있게 하는, 마주하고 싶게 하는 마음가짐을 불쑥 가져다 주기도 했다. 그러니까 어느샌가 문득, 다시 한번 더, 하는 의지 같은 것이 생겨나며, 이제는 그만 놓아버리고 싶은 생의 끝자락에서 지그시 아랫입술을 깨물어 보게 되는 것이었다.
짧지만 깊었던 이번 여행의 경험을 통해 나는 감히 말하려 한다. 생의 우울과 무기력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라고, 한 번뿐인 생을 고민하기에 작고 아늑한 방은 그리 적합하지 않은 곳일 수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이는 그 누구가 아닌, 바로 나 자신에게 하는 말임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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