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의 소설을 읽고 싶었지만 또 읽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소설이 좋으면서도 또 감당하기 힘들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늘은 <너의 여름은 어떠니>를 읽었고, 예상은 적중했다.
소설에 나오는 '나'가 준이 선배를 조금씩 좋아하기 시작할 때부터, 아, 또 크게 상처 받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해 책을 덮을까 고민하기도 했다. 물론 뒷 이야기가 궁금했기에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잠시 멈췄다가 계속 문장을 읽어 나갔다. 그렇게 읽어버렸다. 좋은 걸까. 소설을 읽은 후에는 조금 더 머뭇거리게 되는 일은. 조금 더 조심스러워지게 되는 일은.
한 여름,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는 일은 정말이지 안부가 궁금하거나 혹은 특정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준이 선배는 후자의 경우였다. 방송국에서 AD로 일하는 그는 한국의 달인, 푸드파이터 편에 출연할 먹성 좋아 보이는 배경 같은 등장 인물을 찾아야 했고, 그렇게 '나'를 떠올린 것이었다.
엄밀히 말해 '내'가 지금도 준이 선배를 좋아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호감과 모난 듯 하면서도 때로 아스라이 빛나기도 하는 대학 시절의 좋았던 기억 때문인지, '나'는 끌려가다시피 한 방송국 무대를 박차고 뛰쳐 나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와중에 선배에게 잘 보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전에도 그랬듯 그를 좋아하는 '나'의 마음은 또 다른 마음의 문턱 앞에서 제자리로 돌아와야 했다.
가닿지 못하는 마음, 가닿지 못한 마음을 책임져야 하는 건 매번 '나'의 몫이다. 마음을 직접적인 말로 전하지는 않지만 무수한 은유와 몸짓으로 표현하는 '누군가를 홀로 좋아하는 마음'은 따지고 보면 온전히 내게서 비롯된 마음만은 아님에도, 많은 경우 전적으로 나의 몫이다. 하지만 그렇게,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여러번 꺾이고 난 다음, 더는 상처 받지 않는 방법을 알게 되고, 그렇게 더욱 '의젓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되었음을 안다. 더는 쉽게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고, 또 마음을 주지 않으며 나를 지키는 '현명한 안목'을 갖게 될 때, 비로소 '상대를 보는 눈'이 생겼다 말하곤 한다. 그 와중에 때로 울 수 있다는 건, 울어버리게 된다는 건, 완벽히 어른이 된 것은 아니라는 삶의 어떤 지표 같은 것은 아닐까.
소설 속 문장[문단]들을 옮겨 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조용히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때 물속에서 느낀 아주 기이한 고요를 기억하고 있다. 가까스로 물 밖에 머리를 디밀었을 때 매미 소리가 무척 시끄럽게 들려왔던 것도. 어려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 순간 누가 보고 싶다거나 지난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나는 그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좀 외로웠다. 아무도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모른다는 고립감. 그리고 그걸 누구에게도 전하지 못하는 갑갑함이 밀려왔다. 수면 위로 아른아른 조용하게 빛나는 여름 햇빛이 보였다. 손 내밀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유혹하듯 화사하게 출렁이던 차안의 얇고 환한 막. 나는 그 빛을 잡고 싶었다. 하지만 손에 걸리는 거라곤 쥐자마자 이내 부서지는 몇 움큼의 강물이 전부였다. 생전 처음 겪는 공포가 밀려왔다. 아득하고 설명이 안 되는 두려움이었다. 나는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그때 누가 내 손을 잡는 게 느껴졌다. p.41
곧이어 내가 살아 있어, 혹은 사는 동안, 누군가가 많이 아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곳에서, 내가 아는, 혹은 모르는 누군가가 나 때문에 많이 아팠을 거라는 느낌이. 그렇게 쉬운 생각을 그동안 왜 한번도 하지 못한 건지 당혹스러웠다.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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