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위해 책장에 고이 꽂혀있던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집 <The Americans>
를 들춰본다. 그의 사진을 보다 보면, 이념과 구원, 배제와 차별, 탄생과 죽음 등의 단어가 머릿속에 맴돈다.
그의 사진은 초점도 잘 맞지 않고, 피사체가 지나치게 흔들리고, 노이즈가 가득하다. 오늘날 그런 스타일에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지만, <The Americans>
가 처음 출간되고 Popular Photography라는 매체는 그의 사진을 '술에 취한 거 같다'고 평가했다. 당시엔 분명 낯선 스타일의 사진이었고, 때문에 초기 판매량도 좋지 않았다. 잭 캐루악이 책의 서문을 써주지 않았더라면 그의 사진은 영영 묻혔을 수도 있을 것이다.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은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고자 했던 브레송에서 이어져 오는 다큐멘터리의 전통을 깨뜨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1955년, 31살의 프랭크는 구겐하임 재단 지원을 받아 아내와 두 자식을 데리고 미국 전역을 여행한다. 이후1958년, 83장의 흑백 사진으로 구성된 <Les Americains>
를 프랑스에서 출간한 뒤, 미국에서 <The Americans>
를 출간한다. 이것이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집 중 하나가 될 거라는 건 프랭크 자신은 알았을까.
스위스에서 건너 온 이민자였던 프랭크는 이내, 물질만능주의 미국 사회의 어둡고 씁쓸한 단면을 마주하기 시작한다. 프랭크는 초기에는 뉴욕의 Haper's Bazzar에서 상업 사진가로 일을 시작했지만, 이내 이를 그만두고 남아메리카로 떠나 볼리비아와 페루에서 사진을 찍으며 근근이 먹고 살았다.
사진집의 마지막에 담긴 그의 아내와 아이의 모습이 담긴 사진에 한참을 머물다 사진집을 덮는다. 이제, 그의 시대는 저물었다. 올해로 93세를 맞은 프랭크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내 사진은 오래된 것'이라며, '요즘처럼 압도적인 이미지가 쏟아지는 시대에, 더 이상 특별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를 인터뷰한 가디언의 Sean O'Hagan은 프랭크의 <미국인들>을 '사진이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진의 본질을 변화시켰다'고 평가한다. 그는 프랭크가 다이안 애버스가 말한 '공허함'을 미국인들의 꿈과 현실 사이, 삶의 한가운데서 발견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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