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은 타의적이며, 동시에 개인적인, 돌아옴이 전제되지 않은 떠남이다. 소련의 프라하 침공을 사진으로 기록한 쿠델카는 소련의 압박으로 1970년 고국 체코를 떠나야 했다.
망명된 쿠델카는 망명자 대신 자유로운 여행자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고선,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사진을 찍었다. 한 곳에 3개월 이상 머물지 않고, 더 이상 찍을 사진이 없다면 떠나야함을 알았던 그는 어쩌면 사진을 찍기 위해 여행을 했는지도 모른다.
세계적인 사진가로서 이름을 알리는 동안 그에게 수 많은 작업 제의가 들어오지 않았을리 없다. 그럼에도 그는 외부적인 일을 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찍었다.
프로 사진가였던 그는 동시에 프로 여행자이기도 했다. 긴 여행을 계속하며 '약간의 음식과 숙면'만 있으면 만족할 수 있음을 알았던 그는, '오늘도 어딘가에서 자게 될 것이므로' 어디서 자야할지 걱정하지 않았다. 한 벌의 외투와 두 벌의 셔츠로 그는 몇 년을 나곤 했다.
쿠델의 카메라에는 집시와 소수민족, 이제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한 '망명된' 혹은 '망명 중'인 것들이 담겼다. 그런 쿠델카의 사진은 선명한 메시지를 전한다기보다는, 의문의 문장들을 던지며 내면 깊숙한 곳을 자극한다. 베르나르 뀌오가 사진집의 서문에 적었듯, 쿠델카는 망명이라는 사건이 자신의 삶과 만나는 지점을 사진으로 제시하고 있는 건 아닐까.
떠난다는 것, 두려워한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 그림자처럼 산다는 것, 한쪽 다리를 잃는다는 것, 뚱뚱해진다는 것, 기도한다는 것, 위안을 얻는다는 것, 운다는 것, 기다린다는 것, 즐긴다는 것, 맞아들인다는 것, 죽은 사람에게 꽃을 가져간다는 것, 아이들을 돌본다는 것, 웃는다는 것, 체포된다는 것, 바이올린을 켠다는 것, 이것들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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