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레니스 애벗(Berenic Abbott, 1898-1991)은 미국의 선구자적인 다큐멘터리 포토그래퍼였다. 그녀의 작업 중 가장 유명한 것은 <Changing New York (1936–1938)>으로, 대공황시기 급변하는 사회 풍경과 건축을 담았다.
애벗은 사진관은 그녀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잘 드러난다. "사진이란 그림이 아니며, 시도 아니고, 심포니나, 댄스도 아니다. 또한 아름다움에 관한 것도 아니며, 기술을 뽐내거나 최종 인화물 퀄리티에 관한 것도 아니다. (...) 사진은 선별을 거친 중요한 다큐먼트여야 한다. "
베레니스 애벗과 사진
베레니스 애벗의 생애는 꽤나 독특하다. 그녀는 사진 작가로서 포트레이트, 다큐멘터리, 과학 사진에 많은 기여를 했으며, 기록자로서 유진 아젯의 작품들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다. 그녀는 또한 사진 이론가이기도 했다.
애벗은 1917년 오하이오 주립대학에 입학하기 전 콜럼버스와 클리블랜드에서 시간을 보냈다. 1년 간 대학을 다닌 후 그녀는 뉴욕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여러 예술가들을 만났지만, 곧 환멸을 느끼고 1921년 편도행 티켓을 끊어 프랑스로 넘어 간다.
애벗은 2년 간 파리에 머물며 조각과 그림을 공부했지만, 안정적인 수입을 얻는데까지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그녀는 미국 출신의 다다이즘 예술가 만 레이의 사진 조수로 일할 기회를 얻어 암실 기법을 배운다. 1924년 암스테르담을 시작으로 그녀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파리를 담으며 동시에 상당히 유명해진다.
1926년 애벗은 단독 전시회를 열고, 자신의 스튜디오를 설립한다. 보그 잡지에서 일하며 여러 예술가들과 작가들을 만나기도 했다. 애벗은 정형화된 포트레이트 사진을 거부하고, 이를 드라마틱하게 묘사하는 것을 좋아했다.
"포트레이트는 빛에 의해 크게 좌우되며 기술적으로 완벽해 질 수 있지만, 다큐멘터리나 기초적인 감정, 제스터, 태도가 제대로 표현되지 않은 예술처럼 실패할 수 있다."
1929년 애벗은 뉴욕으로 돌아왔고,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 뉴욕에 매료되어 이를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1935년 연방 예술 프로젝트에서 기금을 지원 받는데, 그녀의 기획안은 다음과 같은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To photograph NYC means to seek to catch in the sensi- tive and delicate photographic emulsion the spirit of the metropolis, while remaining true to its essential fact, its hurrying tempo, its congested streets, the past jostling the present. The concern is not with an architectural rendering of detail, the buildings of 1935 overshadow- ing everything else, but with a synthesis which shows the skyscraper in relation to the less colossal edifices which preceded it. (...) it is important that they should be photographed today, not tomorrow; for tomorrow may see many of these exciting and important memen tos of eighteenth and nineteenth century New York swept away to make room for new colossi."
과학 사진과 애벗
그녀의 뉴욕 사진들은 대단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후 그녀는 FAP를 탈퇴하고, 새로운 사진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애벗는 과학 사진을 찍기 시작했으며, 한 과학 잡지사의 사진 편집자가 된다.
그녀는 "과학으로 이뤄진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고 믿었으며, 사진이 과학과 일반인들을 매개해 줄 수 있다고 믿었다. 과학 사진에 대한 열정은 그녀로 하여금 사진 장비와, 조명 방법, 기술들을 개발하도록 했다.
이처럼 애벗의 사진은 포트레이트, 뉴욕, 그리고 과학 사진의 세 시기로 나뉜다. 하지만 그녀는 미국의 풍경을 담는 것도 좋아했다.
애벗과 유진 아젯
애벗은 1925년 아젯의 사진을 접하게 되었고, 이제는 노쇠한 그와 친구가 된다. 그는 자신의 일과 아젯의 작업에 모두 열심히 임했는데, 애벗은 아젯의 사진이 자신에게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1927년 아젯이 사망하고 그녀는 그의 작품을 전시하고 홍보할 권한을 얻는다. 애벗은 미국으로 돌아와 아젯의 작품과 자신의 작품을 함께 전시하다가, 1968년 현대 예술 박물관에 작품을 판다.
20세기 사진과 애벗
일생동안 애벗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와 반대편에 서 있었다. 모더니스트였던 스티글리츠와 다르게 애벗은 ‘‘사진은 정교하고 예술적으로 표현될 수 있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티글리츠와 그의 지지자들에게 중요했던 "291" 갤러리의 입장과 달리 달리 애벗은 그림과 사진에 어떠한 관계도 없다고 봤다. 애벗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어느 매체가 렌즈를 통해 형성된 실제적인 이미지의 특성을 반영한다면, 나는 그것을 왜곡시키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녀는 아방가르드적 성격의 이미지의 복제를 거부했고, 현실주의를 옹호하는 다큐멘터리 콘텐츠를 추구했다. 그녀에게 사진이란 현실적이고 역사적이어야 하며, 인위적이지 않은 것이어야 했다. 애벗의 사진은 그러한 그녀의 철학을 반영한다.
이하 베레니스 애벗의 사진들.
추가로 읽어볼 글들:
https://en.wikipedia.org/wiki/Berenice_Abbott
https://www.theguardian.com/artanddesign/2008/oct/29/berenice-abbott-bill-wood
https://www.ft.com/content/bf22f736-c927-11e9-af46-b09e8bfe60c0
https://lens.blogs.nytimes.com/2015/05/06/berenice-abbott-writing-her-own-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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