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디 아담스(Eddie Adams, 1933~2004)는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13곳 이상의 전쟁터에서 사진을 찍었다.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난 아담스는 혼자서 사진을 공부했다. 한국 전쟁 당시 미해병대원으로 참가했으며, 1961년 AP 통신사 소속으로 일을 시작했다. 아담스의 사진은 타임, 뉴스위크, 라이프, 보그, 뉴욕 타임스 등에 정기적으로 게재되었다. 1969년 퓰리처 상을 수상했다.
에디 아담스와 베트남 전쟁
에디 아담스의 대표적인 사진 <베트콩 죄수의 처형: Viet Cong Prisoner's Excution>을 찍은 일화는 다음과 같다. 1968년 2월 1일, 에디 아담스는 사이공의 한 거리에 있었다. 베트남 인민군과 베트콩이 남베트남으로 밀려들어온 지 이틀이 지난 다음이었다. 아담스는 혼란스러운 거리의 모습을 담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베트남 육군 준장 응우옌응록로안(Nguyen Ngoc Loan)을 만나게 된다. 그의 옆에는 로안의 친구의 가족을 죽인 응우옌반렘(Nguyen Van Lem)이 있었다. 처음에 아담스는 로안이 그를 심문할 거라 생각했지만, 로안은 조용히 권총을 들어 렘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이쯤되면 로안 장군이 극악무도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로안은 베트남에서 존경 받는 장군이었고, 그가 총을 쏴 죽인 렘은 경찰들의 부녀자, 친척들을 살해하고 강간했으며, 이를 자랑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 사진은 무고한 시민을 살해하는 장면으로 인식되었고, 미국내 반전 여론을 부추겼다. 반전 분위기를 이끈 것 까지는 좋았으나 아담스는 훗날 자신의 사진이 장군에게 의도치 않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며 미안해 했다.
장군은 베트콩을 죽였지만, 나는 내 카메라로 장군을 죽였다. 사진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사람들은 사진을 믿지만, 사진가들은 거짓말을 한다. 심지어 조작을 하지 않고도 거짓말을 한다. 사진은 절반 정도만 진실일 뿐이다.
베트남 전쟁과 사진
베트남 전쟁을 담은 사진이 없었더라면, 당시의 미국인들은 전쟁의 참상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이러한 사진은 미군에게 저항하는 베트콩은 이렇게 처형 당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즉, 전쟁은 위험하고 무서운 것이지만, 미국에 저항하는 것 또한 위험하고 무서운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고전했고, 아담스의 사진을 더불어 수많은 전쟁 사진들은 미국 내 반전과 전쟁의 무용함을 이야기하는 정치적 기능을 했다. 아담스는 또한 남베트남 난민들을 기록한 <미소 없는 배: The Boat of No Smiles>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는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20만 명의 남베트남 남민들이 미국으로 들어오도록 하는 이민법 찬성을 불러일으킨 연민을 자아내는 사진들을 많이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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