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표현함으로써, 존재는 살아있음을 증거한다.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를 봤다. 다큐멘터리는 인터뷰와 유품을 통해 마이어의 생애를 추적한다. 영상을 보며 조금이나마 가늠해볼 수 있었던 그녀의 삶은 외롭고 가난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계속해서 그것도 아주 많이 찍었다는 것이다. 인터뷰이들 중 일부는 비비안이 저지른 폭력과 히스테리를 폭로하고, 또 대다수가 광적인 수집증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부모님을 모두 여의고, 가족도 친구도 없이 홀로 살아가던 그녀의 현실적 상황과 더불어, 아마도 어렸을 때 경험했던 폭력과 상처가 가득한 그녀에게, 사진이란 자신의 살아있음을 증거하는 도구이자 표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의 작품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비비안 마이어는 여자였고, 또 보모였다. 따라서 사진이 아무리 좋았다 하더라도 당시 사회는 그녀 작품의 가치를 결코 알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유사 이래 인류는 서로에게서 서로를 구분지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예술이란 그러한 구별지음을 더욱 공고히하는 위계-결정론적 역할을 담당하곤 했기 때문이다. 낮은 신분, 낮은 계층의 진솔한 목소리는 살아있는 동안에는 외롭고 쓸쓸한 투쟁적 외침 정도에 불과하다가 죽음 이후에야 비로소 조명되곤 하는 건 드문 일은 아니다.
만약 조금만 더 늦게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다. 적어도 그녀가 동시대에 살아가고 있다면 적어도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의 작품들을 공유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토록 쓸쓸하고 외롭게 말년을 보내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유명해지지 않았을 수 있고, 돈을 많이 벌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자신을 둘러싼 사회와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지난 생을 조금은 다르게 느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쓸데없이 오지랖 넓은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진짜 생각과 마음에 대해서는 모든 것이 추측일 뿐이니까.
보모이자 사진가로 살았던 비비안 마이어
보모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이에 대한 소통적 대답으로부터 단절되기 쉬운 업이다. 보모의 고용주는 대개 대화 보다는 명령 위주의 메시지를 건네기 마련이며, 보모가 자신들이 돌보는 아이들에게 메시지를 건넨다 하더라도, 돌아오는 건 순수하면서도 일방적인 메시지들일 경우가 많다. 게다가 보모에게는 사회적 활동을 경험하는 일터가 곧 집이기 때문에, 비비안 마이어에게 유일한 개인적-사회적 접점은 거리-사진을 통해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말하면서도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보모로서의 행위와 경험들은 사진을 찍는 일과 닮았다. 그녀는 아마도 보모 일을 하면서 사진을 찍었다기 보다는, 사진을 찍기 위해 보모 일을 택했을 것이다.
그녀의 사진들은 존 말루프가 운영하는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http://www.vivianmai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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