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이제는 오래전 이야기가 되어 버린 지난 학창 시절 이야기들을 하나 둘 꺼내 보다, 호숫가를 따라 걸었다.
새롭게 건축되고 있던 아파트들에 둘러 쌓인 가을 골목의 풍경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서로를 껴안고 있던 연인들. 가맥집 앞에서 전화 통화를 하며 담뱃재를 털어내는 아저씨들. 마스크를 쓴 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가족들을 우리는 지나온 터였다.
어둠을 밝히는 조명을 따라 산책길이 이어졌고, 한 걸음 내딛는 발 아래에서 느껴지는 작은 나무다리의 떨림을 새삼스러워하며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니 어느새 호수를 한 바퀴 다 돌았고, 연꽃잎이 듬성듬성 보이는 호수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좁고 으슥한 길로 들어섰다.
시지푸스의 밤은 어떠했을까. 그는 오늘의 노동에 회의를 느끼지 않고, 그 반복의 반복이야말로 일상의 소중한 비밀이라는 것을 깨달았을까. 눈을 감을 때면, 뒤를 돌아보곤 했을까. 그는 첫 발을 내딛던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을까.
먼 길을 돌아 다시 산책을 시작했던 곳으로 되돌아 왔을 때, 우리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삶에 대한 여전한 기대와, 좌절과, 옅은 희망을 간직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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