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으로 번역다운 번역을 해본 것은 대학의 번역 학회에서였습니다. 학회에 들어가려면 간단한 면접과 함께 샘플 번역 테스트를 봐야 했는데요. 당시 간단한 외신을 번역했었는데, 이걸 그대로 번역해야 할지 살을 조금 붙여 의역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더군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 깨닫게 된 건 결국 그것이 번역 실력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적절한 직역과 적절한 의역이 원글의 의미와 의도를 충실히 반영하는 수준에서 현지 상황에 가장 적합하고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것... 이렇게 적으니 수식어구를 가득 담은 말장난 같지만 절대적인 기준은 없고 바로 그 '적절한'함을 가장 보편적인 측면에서 잘 제시하는 것이 곧 번역가의 실력이더군요.
그런 의미에서 직역이냐, 의역이냐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때에 따라서는 직역을 중심으로 할 때도, 의역을 중심으로 해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서비스 이용 약관, 제품 사용 설명서와 같이 각 단어의 의미와 문장의 의미가 도착어로 풀었을 때 다소 어색하더라도 원문을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면 직역을 중심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달리 도착어의 현지 상황과 이해가 중요한 문학 작품이나 에세이, 영화 대본 등의 경우에는 의역을 중심으로 풀어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직역과 의역은 어떤 번역이 더 적합할지를 고민하여 나오는 하나의 선택지입니다. 즉, 직역과 의역은 번역가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원글과 번역글의 목적과 의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직역이냐, 의역이냐 하는 이분법적 선택지를 놓고 어떤 것이 더 나은 번역일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때로는 직역이 더 필요하고, 때로는 의역이 더 필요할 때가 있으니까요.
저는 이 두 가지를 잘 조합한 경우가 로컬라이제이션(localization)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단순 번역(translation)과 다르게 모든 상황을 현지에 맞게 최적화하는 것인데요. 언뜻 보면 다소 의역에 중점을 두는 번역이라할 수 있지만, 출발어의 의도와 목적 또한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경우 가장 이상적인 번역의 결과물을 의미하는 경우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번역과 외국어 실력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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